민가다헌

▲ 한우등심 너비아니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즈넉한 거리를 걷다 보면 담장이 야트막한 한옥 한 채가 눈에 띈다. 바로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익두 대감의 옛 저택. 서울시 민속자료로도 지정된 이곳은 1930년에 건축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개량 한옥으로 꼽힌다.

이 집의 지금 이름은 민가다헌. ‘민씨네 집’이라는 뜻이기도 한 이곳은 지금은 독특하게도 한식 & 와인 전문 레스토랑이다. 처음 ‘한옥에 무슨 와인이냐’는 지적을 받으며 문을 열지 못할 위기도 겪었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동서양의 조화를 잘 이룬 명소로 대접받고 있다.

4년 전 문을 연 후 최근엔 부분적으로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뒤뜰 격인 야외 정원에 서양 가옥의 테라스나 패티오(Patio)처럼 조그만 야외 테이블 자리를 만들었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천장에는 유리를 덮었지만 옆으로는 트여 있어 정원에 앉아 식사하는 기분 그대로다.

채 20여 가지나 될까 할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은 종류의 메뉴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내부 구조나 주요 시설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보존해야 하는 고가(古家)여서 주방도 옛 부엌 자리를 그대로 쓰는 탓이다. 그리 넓지 않은 주방에서 엄선된 메뉴만을 골라 내놓는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새송이버섯과 반절토마토의 한우등심 너비아니. 등심을 얇게 썰어 2~3조각 그릴에 구워내는데 얇아서인지 질기지가 않다. 한 입 썰어 입에 넣으면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전해지는데 이는 불고기 소스 덕분이다. 불고기 소스에 오랜 시간 절여놓은 등심을 그릴에 구워 고기에 그릴의 줄무늬 자국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고기 가장자리로는 하얀 벽이 처져 있는데 바로 으깬 감자로 만든 것. 나름대로 용도가 있다. 감자 벽 때문에 고기에 뿌려져 있는 불고기 소스가 밖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끝까지 고기와 함께 한다. 특히 외국인들은 등심을 불고기 맛으로 먹을 수 있어 좋아한다고. 고기 위에는 올리브 오일에 절여 반건조시킨 토마토와 버섯이 놓여져 있다.

중식당의 동파육과 비슷한 삼겹살찜은 특히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다. 삼겹살을 통째로 쪄서 썰어 나오는데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이 매력이다. 오랜 시간 찐 때문인지 기름기도 쏙 빠져 있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한식에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것. 웬만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버금갈 정도로 다양한 와인 리스트를 구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집에서 꼭 맛보고 가야 할 것은 한옥의 향취. 옛 모습 그대로인 서까래나, 한옥으로는 드문 길다란 복도(회랑) 등 세월에 풍화되지 않은 운치가 여전히 살아 있다. 특히 이 집에서 직접 담가 땅에 파묻어 놓은 항아리에서 꺼내오는 백김치는 손님들이 반드시 맛보고 가야 하는 특별한 반찬이다. 새콤하면서도 신선한 맛이 그 옛날 할머니가 집에서 담가주신 김치 같다.

메뉴 주로 코스로 제공된다. 토마토새우살사와 폰즈소스의 두부튀김, 전복죽, 야채샐러드, 야채 볶음밥, 주요리, 커피 또는 차로 구성되는 점심 코스 요리가 1만8,000원부터. 저녁은 3만4,000원부터.

찾아가는 길 인사동 거리 수도약국 골목으로 50m 안쪽. (02) 733-2966




글·사진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