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고향이란 말을 생각하면 먼저 마을 어귀에 큼지막이 자리잡은 느티나무 정자목이 떠오른다. 나무 그늘 밑에서 마주 앉아 장기를 두는 노인들의 모습과 어슬렁 거리는 누렁이, 할아버지를 따라와 재잘거리는 꼬질한 그러나 초롱한 시골 아이들···.

봄이 오면 그 많은 가지마다 연두빛 고운 새순을 내놓아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리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더위를 막아주며, 가을엔 황갈색 낙엽이 삶에 대해 사색하도록 해주는 고향 마을의 그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이다. 그리고 아주 커다랗게 자라는 나무라 역사가 깊은 마을이면 대부분 느티나무 정자목을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마을에서 사랑을 받으며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 남은 많은 느티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또는 노거수(老巨樹)로 새로이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에서부터 북쪽으로 평안도까지 분포하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그 수가 점차 줄어든다.

푸른 녹음이 우거지면 무성하여 싱그럽고 가을의 갈색 잎도 운치 있지만,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고루 퍼져 둥근 수관을 만들므로 겨울철 앙상한 가지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을 때면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다.

가지마다 그득하게 달리는 잎은 긴 타원형으로 좌우가 똑같지 않고 다소 일그러져 있다. 또 나란히 생겨 난 엽맥은 느티나무의 개성 가운데 하나이다.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봄이면 피어 나는 연록색 꽃차례가 늘어지며 가을에는 자그마한 콩팥 모양의 열매가 엽액마다 달려 있다. 더욱이 느티나무는 수피도 그 아름다움에 한몫을 하는데 둥굴둥글 이어진 회갈색 수피가 종이 조각처럼 얇게 떨어지곤 한다.

잎이 보다 긴 것을 긴잎느티나무라 하고 느릅나무처럼 둥근 것을 둥근느티나무라 하는데 속리산에서 자란다. 느티나무의 한자이름은 규목(槻木)이다.

느티나무의 목재는 우리나라 제일로 친다. 무늬와 색상이 아름답고 중후하여 양반 목재문화의 중심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는 살아서는 그 기상을 높이 평가 받지만 죽은 목재로서는 느티나무와 사뭇 다른 대접을 받았다. 서민은 살아 생전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소나무로 만든 가구를 놓고 쓰다가 죽어서도 소나무 관에 묻히지만, 양반은 느티나무로 지은 집에서 느티나무로 만든 가구를 놓고 살다가 느티나무 관에 실려 저승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목재로서의 느티나무의 가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근거로 신라의 천마총이나 가야분에서 나오는 관도 느티나무였으며 유명한 고궁이나 사찰의 기둥도 역시 느티나무로 썼다.

이러한 느티나무 목재의 선호는 지금까지 남아 일부 호화주택에서는 마루바닥이나 계단의 목재로 느티나무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밖에도 힘을 받는 구조재에서 불상 등을 만드는 조각재, 음향이 좋아 악기재까지 이용되는 등 느티나무의 목재로서의 용도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렇듯 목재로서의 느티나무는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목재를 얻기 위해 나무를 심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밖에 용도를 살펴 보면, 느티나무는 본격적으로 한방에서 이용하지는 않지만 옛 글에는 가을에 열매를 따서 복용하면 건강에 좋은데 눈이 밝아지며 심지어는 흰머리카락이 검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느티나무가 오래 사는 장수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상수로서 느티나무의 가치는 현재 전국의 공원이나 학교 등 공공건물에 얼마나 많은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는지 보면 짐작 할 수 있다. 더욱이 먼지를 타지 않아 항상 깨끗하고 벌레가 먹지 않아 귀히 보인다. 가로수로도 심어 놓은 곳이 많고 분재의 재료로도 적합하다.

지난 여름 커다란 느티나무가 만든 넉넉한 품 속에 안겨 더위를 식혔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늘로는 짙푸른 잎새가 겹겹이 한여름의 뜨거움을 막아 주고 사방으로 통하는 바람결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는 여름내 들은 매미 소리는 또 얼마나 요란했던가. 누구나의 고향 같은, 그래서 더 없이 편안한 느티나무 밑에서 보낸 시간들은 더 없이 소중한 추억이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한가위에 고향에 가면 다시 한번 그 품에 안기고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