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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릉 선수촌'
위기의 미니시리즈, 해법은 초심으로의 귀환이다.

TV드라마의 꽃인 미니시리즈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올 들어 방영된 미니시리즈 중 대박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시청률 30%를 넘긴 작품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나마 성공적이라 여겨지는 시청률 20%를 넘긴 작품도 최근 종영한 SBS ‘돌아와요 순애씨’를 비롯해 MBC ‘궁’, SBS ‘마이걸’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 수두룩하고, 심지어 애국가 시청률이라 불리는 3%에도 못 미친 작품까지 나왔다. 미니시리즈는 오후 10시대라는 황금 시간대를 차지하며 드라마의 중심을 차지해 왔기에 스타들 또한 여타 드라마보다 미니시리즈를 선호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니시리즈는 장르적으로 시대에 뒤쳐진다고 여겨지곤 했던 일일 연속극이나, 사극 등에게 심하게 밀리는 인상마저 짙게 풍기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50%대를 기록한 MBC ‘내이름은 김삼순’ 등 미니시리즈의 위세는 굳건해 보였다. 하지만 올해 감지되는 미니시리즈의 추락은 날개가 없어 보일 정도다. 장르의 위기를 넘어 존폐의 기로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니시리즈의 성공 기준은 시청률 30%로 여기곤 했지만 올해엔 20% 아래로까지 내려갔다. 10%만 넘어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마저 느껴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사에서 오랜 기간 시청률 선봉장 역할을 하고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미니시리즈가 갑작스러운 추락 국면에 접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탄생 초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점이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안방극장의 강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미니시리즈의 장점은 기존 연속극이 지니지 못한 압축성과 속도감 그리고 긴장성이었다.

6개월 이상 장기 방영되곤 하는 연속극이 완만한 전개 속에 긴장감이 떨어졌다면, 미니시리즈는 이를 1~2개월에 압축해 집약적인 완결미를 보여줬다. 보다 집약적이긴 하지만 일회성에 그쳐 아쉬움을 주던 단막극과 연속극의 장점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형식으로 각광을 받은 것이다. 초창기 미니시리즈의 미덕엔 새로움을 추구하는 실험정신과 독창성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최근엔 독창성이 사라진 천편일률적인 미니시리즈가 양산돼 새로움의 미덕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청춘 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멜로 드라마가 미니시리즈의 전부가 돼 버렸고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억척 또순이의 신데렐라 스토리 등 유사한 캐릭터와 스토리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돼 흥미 요소를 반감시킨 것이다.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시청자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또한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서 비롯된 제작 환경의 악화도 ‘날림 드라마’의 남발로 이어지며 질적 저하의 원인이 됐다. 쪽대본과 생방송에 가까운 제작 시스템에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는 게 이상한 게 사실이다. 치솟는 스타의 몸값으로 인해 간접광고가 남발돼 전개 방향을 흐리는 불필요한 장면들이 속출하는 점 또한 미니시리즈의 위기를 가중시킨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는 의미 있는 시도들도 나오고 있다. 내용과 형식의 다변화를 추구하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그나마 이런 시도들에서 대안을 찾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

미니시리즈 내부에서 새로운 실험정신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첫 방송된 KBS 2TV 4부작 미니시리즈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이나 27일 첫 방송 예정인 KBS 2TV ‘도망자, 이두용’ 등은 길이 차원의 새로움 외에 형식과 내용면에서의 새로움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은 정통 스릴러를 표방하며 짜임새 있는 구성을 추구했는가 하면, 배경을 청와대라는 특수적인 공간에 한정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도망자, 이두용’은 드라마와 연극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연극의 한 장르인 부조리극을 화면으로 옮겨온다는 기획으로 연극적인 기법들을 다수 도입하는 실험정신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 초 선보인 4부작 미니시리즈인 MBC ‘태릉선수촌’이 길이에 있어 새로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과 ‘도망자, 이두용’은 여기에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추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기는 분명 기회고, 그 기회를 활용하는 의미 있는 움직임 또한 미약하지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작은 움직임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물결로 확대돼야 할 것이다. 미니시리즈가 예전의 영화를 되찾는 길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