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의 문화사 / 센더 L. 길먼, 저우 쉰 외 지음 / 이수영 옮김 / 이마고 발행 / 3만5,000원

요즘 ‘○○의 문화사’라는 제목의 신간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문화란 인류의 창조물이라면 뭐든지 넉넉히 품는 개념이니 문화사는 연구 영역에 울타리를 짓지 않는 전방위 역사 서술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 전반을 사통팔달할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 문화사 연구의 성공 내지는 흥행의 핵심일 텐데, 고급스러운 양장과 공들인 편집이 인상적인 이 책은 흡연을 키워드로 삼았다.

으레 ‘흡연=담배’이니 제목을 ‘담배의 문화사’로 치환해 놓고 책장을 넘기는 독자가 많을 듯싶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울타리 치기’다. 이 책은 제목처럼 흡연(吸煙), 즉 연기를 들이키는 행위 전반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 연기가 꼭 니코티아나 타바쿰 또는 니코티아나 루스티카라는 학명의 식물인 담배에서 피어오른 게 아닌 만큼 아편·마리화나·코카인 등 주요 향정신성 물질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담배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궐련, 즉 말린 담배를 잘게 잘라 종이에 마는 형태로만 존재했던 게 아니므로 파이프 담배·코담배·씹는 담배·여송연 등도 빠짐없이 언급한다.

다른 문화사 서적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우리 시대의 현상과 어휘에 매몰되지 않은 독자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선다.

책은 크게 네 장으로 구성된다. 첫 장은 ‘흡연의 역사와 문화’.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 부분엔 21명의 저자가 나서 시공-역사와 지역-을 가로지르며 흡연을 논한다. 각 논문 내용이 중복되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율한 기획이 인상적이다.

애초 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 제도에서 의례나 의술 행위에 활용되던 담배는 15세기 말부터 신대륙 정복에 나선 유럽을 거쳐 삽시간에 아시아·아프리카로 전파됐다. 담배가 수용되는 양상은 지역마다 달라 영국에선 도입 당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치료제 대접을 받았고, 일본에선 담배 대접이 다도와 더불어 독특한 예(禮)로 발전했다. 아프리카 소토족은 담배를 신혼부부의 성교를 뜻하는 어휘로 쓰는데, 이처럼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상징체계로 소비되곤 했다.

이에 반해 아편·마리화나·코카인 등은 비(非)유럽지역에서 유럽으로 흘러드는 경로를 취한다. 프랑스는 ‘아편문학’이란 장르를 통해 아편 및 아편굴에 신비로운 아우라를 부여했지만, 영국은 서구 문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반면 서구의 코카인에 대한 경계는 느슨했다. 당시 교황도 즐겨 마신 19세기 중반 인기 음료엔 코카인이 버젓이 들어 있었고, 미국 애틀란타 출신 존 팸버튼이 1886년 첫선을 보인 이후 20여 년간 코카콜라에 이 중독성 물질이 함유됐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5년간 코카인을 규칙적으로 흡입하면서 “중독성 없이 지속적 행복감을 제공한다”는 예찬과 함께 주변에 권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세 개의 장은 역사보다는 문화에 방점이 찍힌 10여 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2장에서는 미술·문학·영화 등 예술 장르에서 표현되는 흡연을 분석한다.

미술의 경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담배를 하층민의 오락거리로 묘사한 이래 흡연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무쌍했다. 19세기 낭만주의 화가들은 자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담배를 문 자화상을 많이 그렸고, 20세기 입체파의 정물화엔 기타, 신문, 안경과 더불어 파이프가 자주 등장한다.

파이프는 서구 화가들이 ‘동양적’-정확히 말하면 이슬람적-인 나른한 미감을 전달하고자 즐겨 그리는 소재이기도 했다.

3장에서는 인종과 성(性)이 담배와 연계되는 지점을 탐색하고, 이어 4장에선 흡연의 권장과 금지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분석한다. 흡연이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학술 논문이 발표된 1930년대 이후 금연운동은 날로 세가 불어났다.

위기 타개를 위해 베스트셀러 ‘럭키 스트라이크’를 생산하던 미국 담배회사가 채용한 홍보 담당자 버네이스는 다름아닌 프로이트의 조카. 그는 제품 자체를 설명하려 애쓰던 기존 광고 기법에서 벗어나 언론·여론조사 등을 활용해 문화적 환경을 유리하게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판매고를 늘려 삼촌의 체면을 살렸다.

‘조선 후기 담배문화의 멋과 여유’라는 부제를 단 안대회 교수의 부록은 한국어판에만 실린 특별한 읽을거리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