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쇼핑 / 이규현 지음 / 공간사 발행 / 1만4,400원

유명 작가의 생애나 명화 감상 안내가 주류를 이루던 미술 대중서에 특이한 책이 등장했다. 일간지 미술 담당기자 이규현 씨가 펴낸 <그림쇼핑>이 그것. “전시회는 안 보고 그림값만 신경 쓰냐”는 구독자들의 힐난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술시장 전문가다. 그에게 미술시장은 단순한 취재거리가 아니라 한 시대의 사조를 규정할 만큼 미술 자체와 불가분 관계에 있는 영역이다. 그가 책을 통해 제언하는 바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그림을 사서 감상하자. 눈이 즐겁고 품위가 생기며 무엇보다 좋은 재테크가 될 수 있다!”

미술에 대한 감식안과 재력을 갖춘 이들이 전유하는 듯싶던 컬렉터의 지위가 일반에도 개방되는 추세에 언론이 부쩍 관심을 갖게 된 건 올해 초부터다. 지난 3월 한 화랑에서는 지명도 있는 중견화가들의 소품을 100만원 균일가에 내놔 이틀 만에 죄다 팔았는데, 구매자의 60%가 처음으로 그림을 사는 사람이었다. 5월엔 젊은 작가들이 제작한 소품을 15만~30만원에 파는 가게가 인사동에 문을 열어 쏠쏠한 실적을 냈다. 여기에 미술품 경매회사들도 중저가 작품 판매에 공을 들이는 등 미술시장의 대중화를 논해볼 만한 상황이 무르익는 중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시의성 있는 주제를 순발력 있게 다뤄 정보를 제시하는 자로서 기자의 특장(特長)이 잘 발휘된 결과물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아직 그림을 사본 적이 없는 ‘잠재적 컬렉터’를 독자로 삼는다. 책을 대별하는 세 개의 장-‘그림쇼핑에 나서다’, ‘미술과 돈에 관한 진실’, ‘이것이 그림값을 좌우한다’- 중 초보 컬렉터에게 실용적인 정보를 주는 부분은 첫 번째 장이다. “1급 브랜드의 중저가보다 2급 브랜드의 최상품을 사라”는 등의 발랄한 표현과 더불어 컬렉팅을 시작할 때 주의점과 투자요령을 조언한다. 이어 실제 그림 쇼핑의 장(場)으로 경매회사, 화랑, 아트페어를 소개한다. 특히 경매 활용법은 저자와 친구 간의 대화 형식을 빌어 상세한 내용까지 알려주고 있어 유용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미술품’이란 제목을 단 두 개의 장은 말 그대로 국내외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 기록을 갖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화보로, 본문 사이에 놓여 독자에게 휴식을 준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현대 미술과 시장의 공존 양상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세계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는 영국계 컬렉터 찰스 사치의 선택에 따라 화가들의 희비는 가파른 쌍곡선을 그린다. 이탈리아 작가 산드로 키아는 자기 작품을 사치가 한꺼번에 팔아버린 후의 상황을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여전히 잘 하고 있지만, 미술 잡지들이 더 이상 내 전시리뷰를 쓰지 않는다”. 뉴욕의 화상들은 졸업도 하지 않은 미대 학생들과 접촉해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사들인다. 유망주를 발굴하는데 팔을 걷은 컬렉터들의 심중엔 꿍꿍이가 있게 마련. 학생들이 시장에서 대접받는 작가로 커준다면 지금의 투자는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오리라는 셈속 말이다.

3장에서 필자는 “피카소라고 해서 다 비싼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피카소는 초기 청색시대, 이우환은 1970년대 이전, 장욱진은 유화보다 매직화 등등 같은 작가라 해도 시장이 선호하는 작품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작품의 완성도만큼이나 이면에 자리한 사연이 가격 형성에 한몫 단단히 한다고 귀띔한다. 일례로 얼마 전 회화 사상 최고가인 1억3,500만 달러에 거래된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Ⅰ’는 화가와 모델 사이에 ‘썸씽’이 있었을 것이란 구설과 이 그림이 나치 정권에게 압수됐던 우여곡절이 그림값에 기여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오랜 현장취재 경험에서 우러난 풍성한 사례, 서술·구성의 변주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지시키는 편집 덕에 이 책은 미술시장을 기웃거리는 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 노릇을 할 만하다. 하지만 1장 이후엔 초보 컬렉터들이 따를 만한 실질적 지침이 적어 아쉽다. 물론 2·3장은 그 자체로 미술시장에 대한 조망과 지적 호기심 충족에 도움을 주지만 필자가 책 전반부에서 호기롭게 올렸던 ‘그림 쇼핑’의 기치 아래서 멀어지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미술시장 대중화가 아직 미완의 상황이라는 현실을 책이 투영하는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서도.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