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 감독 '월드트레이드센터'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 사건이 발발한 지도 벌써 5년.

'기록'과 '증언'의 매체인 영화 역시 이 전대미문의 비극적 사건을 속속 스크린에 등장시키고 있다. 테러의 배후를 음모론의 시각에서 파헤친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과 냉정한 카메라의 눈으로 9·11의 참상을 재구성한 폴 그린그래스의 <플라이트 93>에 이어 올리버 스톤이 9·11영화 대열에 가세했다.

사실, 스톤이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건 조금도 낯설지 않다. <플래툰>, , <닉슨> 등 미국 사회의 전환기적 사건에 기울였던 그의 관심을 상기할 때 세계 정세의 물줄기를 바꾼 9·11의 의미가 남달랐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드트레이드센터>의 실체는 이 논쟁적인 감독에게 기대했던 영화의 꼴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 또는 자신만의 시각을 담은 재해석에 남다른 재주를 지닌 스톤이 그날의 사건에 대해 작가적인 정의를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월드트레이드센터>는 이 같은 기대를 십분 배반한다.

정치영화 아닌 휴먼 드라마

9·11의 배후를 파헤치는 스릴러도, 희생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다룬 정치영화도 아닌 <월드트레이드센터>는 초인적인 용기로 그날의 환란을 이겨낸 영웅들과 그들의 가족을 예찬하는 휴먼드라마다.

뉴저지 항만경찰청 경사 존 맥라글린(니콜라스 케이지)과 9개월차 신참 경찰 윌 히메노(마이클 페냐)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 뉴욕시 한복판에 솟아오른 쌍둥이 빌딩에 재앙이 닥치기 전까지. 2001년 9월 11일 오전, 뉴욕의 환상적인 스카이라인 위로 검은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가자 그들의 일상은 악몽으로 바뀐다.

누구도 작금의 상황에 대해 판단내리지 못하는 판국에 존을 비롯한 항만 경찰청 소방관들은 월드트레이드센터로 향한다.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존 일행은 인명구조를 위해 건물로 들어간다. 그 순간, 또 한번의 굉음이 들리고 그들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땅 속으로 꺼진다.

이제 생존자는 존과 윌 두 사람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놓치지 않은 그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가며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그들의 가족 역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난 다큐멘터리스트가 아닌 드라마티스트"라고 한 올리버 스톤의 말마따나 <월드트레이드센터>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극화했다.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재현 드라마가 안고 있는 딜레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올리버 스톤의 장기다. <닉슨>을 찍을 당시 사실 왜곡으로 스톤을 고소했던 유족들에 맞서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공방을 벌였던 그의 법정투쟁이 영화계의 전설로 기록돼 있을 만큼, 스톤의 자료 수집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스톤의 지휘를 받은 제작진은 9·11 당시 현장에서 활약한 경찰관과 소방대원들을 인터뷰한 것은 물론,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18, 19번째 생존자의 증언에 토대해 드라마를 꾸몄다.

문명의 상징에서 일순간 폐허의 지옥으로 변한 무역센터 세트 제작을 위해 뉴욕 경찰의 협조를 얻었지만 뉴욕시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건이라는 이유로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세웠다. 결국 영화는 뉴욕 중심가가 아닌 변두리에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논평보다는 관조와 성찰

철저한 사전조사와 신중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월드트레이드센터>는 '올리버 스톤의 9·11 영화'라는 수사에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휩쓸린 인간의 맨얼굴은 스톤이 즐겨 다룬 소재였다. 스톤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난 존 F. 케니디와 닉슨, 알렉산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다. <월드트레이드센터>에도 그런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누구도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는 '진행형'의 역사에 대한 거장의 혜안을 엿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하지만 대범하게 미국적 신화의 폐부를 파고들었던 전작들에 비해 스톤은 완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은 9·11이라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주춤한다. 논평 보다 관조와 성찰의 태도가 두드러지는 이 영화는 증오와 불신, 복수가 시대정신이 돼 버린 현재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애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 초반부터 그러한 태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가 시작된 뒤 고작 20여 분 만에 무역센터는 무너져내린다. 그 뒤로는 붕괴된 건물 잔해 사이에 깔린 두 남자와 그들의 생사여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가족들의 애타는 사연이 지리하게 교차편집된다. 아마 이것은 9·11을 보여주는 가장 '작은' 그림일 것이다.

두 남자가 구조되기 전까지 카메라는 그 답답하고 비좁은 공간에 머물러 있다. 죽음의 냄새를 맡으면서 그들이 떠올리는 추억과 후회, 공포, 체념, 희망, 그런 감정들이 끝까지 이어진다. 올리버 스톤은 세계인의 의식을 진공의 상태로 만들어버린 엄청난 사건 앞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감정들'을 찬찬히 반추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혼란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졸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말하는 주인공 존의 말처럼, 어떤 절망과 비극적 상황에서도 강인한 의지는 육체적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것이 2001년 9월 11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절실한 진실'이라고 올리버 스톤은 말한다.

보통사람들이 보여준 삶의 의지만이 이 시대의 희망이라는 영화의 주장이 전적으로 틀렸다 할 수 없으나, 할리우드 반골 감독의 입을 통해 그런 설교를 듣고 되다니, 생경하기만 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