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돈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나

1990년대 최고의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모니카가 레스토랑의 수석 주방장으로 진급하면서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는데 챈들러, 로스, 모니카는 코스요리를 시키고 조이와 피비, 레이첼은 가장 싼 애피타이저 요리를 시킨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로스가 식사비용을 나눠내자고 하자 애피타이저만을 먹은 친구들이 항변을 한다. “우린 고작 샐러드만 먹었어. 그리고 우린 너희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해.”

따지고 보면 대학 교수인 로스, 정보 처리사인 챈들러(후에 광고회사 입사)와 웨이트리스 레이첼(후에 의류업체 입사), 마사지사 피비, 그리고 단역배우에 불과한 조이가 진실한 우정을 나누기에 사회적인 갭이 너무 큰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득격차가 40, 50대까지 계속되면 노후에도 이들이 지금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프렌즈의 친구들이 대책없이 연애에 몰두하는 20, 30대의 낭만을 뒤로 하고 고소득과 큰 집, 여유자금을 중시하는 40대가 됐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레이첼(제니퍼 에니스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돈 많은 친구들’은 ‘프렌즈’의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남편 잘 만난 덕에 호위 호식하며 사는 프래니, 남편과의 섹스에는 문제가 많지만 디자이너로 성공한 제인, 남편과 함께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크리스틴,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가정부로 전업한 유일한 솔로 올리비아. 이들은 결혼 전부터 오랜 친구 사이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화장품 샘플에 목숨걸고 주급 50달러짜리 가정부 일을 해야만 하지만 프래니는 아이에게 70달러짜리 신발을 신키고 200만 달러를 기부단체에 기부한다. 프래니는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몸매를 가꾸지만 올리비아는 주급을 깍으려는 집주인과 신경전을 벌어야만 한다. 설상가상, 프래니가 올리바아에게 소개시켜준 트레이너는 올리비아의 등골을 빼먹는 허섭쓰레기 같은 인간이고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남자는 고작 뚱보 백수 집주인일 뿐이다.

남편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크리스틴은 제인의 남편이 게이일거라고 떠벌리며 은근슬쩍 친구의 불행을 즐긴다. 성공한 의상 디자이너 제인은 디자이너답지 않게 지저분하며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게이로 오해받는 그녀의 남편은 신경질적인 부인보다 그에게 접근하는 게이같은 남자친구들과 더 잘 어울린다.

나이들면 사랑도 우정도 모두 애증의 늪에 빠지는 것인가? 40대인 이들은 서로 할키고 상처주면서도 우정 혹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함께 한다. 하지만 이들은 돈 많은 친구가 부러워 내심 그녀의 결혼생활이 불행하길 바라고 친구가 만나는 남자친구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200만 달러를 모르는 사람에게 기부할지언정 절친한 친구한테는 큰 돈을 쓰고 싶지 않고 돈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되려 변변한 직업이나 가지라며 타박한다. 돈 앞에서 우정은 때로는 남에게 갖는 동정심보다 궁색하고 땅 산 사촌에게 갖는 배아픔보다 치졸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섹스 앤더 시티의 캐리가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잡지사 어시스턴트였다면, 미란다가 변호사가 아니라 만년 고시생이였다면, 홍보회사 이사인 사만다가 스캔들에 휩싸여 백수가 되고 화랑 딜러인 샬롯이 화랑 알바였다면 과연 이들 네 명이 함께 여유로운 브랜치를 즐기며 뉴욕의 나이트 클럽 방갈로를 다 같이 드나들 수 있었을까? 나이들어 이들의 우정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것 역시 그럭저럭 균형이 맞는 경제력인가 보다.

영화 '돈 많은 사람들'은 '프렌즈'와 '섹스 앤더 시티'의 비현실적 낭만을 집어치우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준다. 물욕을 초월한 특이 체질이 아닌 이상, 돈 없으면 사랑이고 우정이고 없다. 동정심과 적선은 우정을 단명케 하는 관계의 적이다. 그렇다고 연봉 5,000만원 이상, 자가 주택 소유, 채무 관계 없음 같은 경제적 조건부터 따지고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하긴, 결혼도 조건보고 하는 세상에 우정이라고 조건을 따지지 말란 법 있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