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 이언숙 옮김 / 열대림 발행 / 1만8,000원

지난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5년5개월의 집권을 마치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재임 기간으로 역대 3위였고 퇴임 직전까지 일본 국민 과반의 지지를 받은, 일견 ‘성공한 총리’였다. 하지만 이웃나라 한국·중국과의 관계에서 고이즈미의 일본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국가였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평화헌법 개정 논란, 자위대 파병, 납북 일본인 문제 등에서 늘상 강경 일변도 길을 걸어 이 ‘괴짜 총리’는 한국인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밖에서 보기에도 이럴진대 일본 내부에서 체감하는 변화의 정도는 훨씬 더했을 것이다. 일각에선 지난해 총선에서 고이즈미가 거둔 압승을 계기로 ‘55년 체제’를 종결짓는 ‘2005년 체제’가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이 맞닥뜨린 변혁의 상황을 매우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한마디로 ‘멸망하는 국가’다. 그가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니케이BP사(社) 웹사이트에 연재한 글을 골라 펴낸 칼럼집의 제목은, 과장이 다소 섞여 있지만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강한 경고성 진단이기도 하다.

필자의 특기인 심층 취재보다는 정치 논평 성격이 강한 53편의 글은 라이브도어 사건, 천황전범 개정 문제, 자민당 개혁, 포스트 고이즈미 등 한국 독자에게도 친숙한 주제별로 구분돼 있다. 고이즈미 체제의 내부인이자 명민한 저널리스트로서 다치바나는 본질과 이면을 직시하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그간 피상적-때론 감정적-으로 접해왔던 사건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일개 인터넷 중소기업 라이브도어를 운영하던 청년 실업가 호리에 다카후미가 거대 미디어 닛폰방송을 장악하려 하면서 촉발된 ‘라이브도어 사건’. 한국엔 ‘고래를 먹은 새우’의 구도로 적잖이 흥미성 뉴스로 다뤄졌던 이 사건을 놓고 저자는 그 배후에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암계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호리에가 닛폰방송 주식을 매수하며 동원한 800억엔은 사실 미국계 거물 증권사 리만브라더스가 빌려준 돈이었다. 이 노련한 금융회사가 새파란 젊은이에게 호의를 베풀며 요구한 것은 라이브도어 주식이었다. 닛폰방송 장악이라는 호재를 이용, 공매도 혹은 신주인수권 행사를 적절히 활용해 막대한 차익을 챙기려는 심산이었던 것. 저자는 결론적으로 미국계 금융자본이 마구잡이 돈벌이에 나서도록 방조하는 고이즈미 개혁을 문제 삼는다.

소위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헌법 9조 개정 공방 속에서 다치바나가 펼치는 개헌 반대론은 해박하고 명쾌하다. 우선 ‘필요없는 것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오컴의 면도칼’ 명제를 끌어들여 개헌을 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과연 있느냐고 되묻는다. 또 판례 중심의 영미법 전통이 일본 사법체계의 당당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이상, 문구 개정보다는 해석에 유연성을 두는 게 낫다는 해석개헌을 옹호한다.

이렇게 형식적 측면에서 공박한 후 저자는 헌법 9조를 유지해야 할 현실적 이유를 적시한다. 전후 냉전의 질곡 속에서도 일본은 경제 성장에만 전념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이 압박했을 법했던 온갖 군사·경제적 요구들을 헌법 9조가 효과적으로 막아주었기 때문이라는 것.

야스쿠니로 대표되는 고이즈미의 외교는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 정치에 대해서도 저자의 평가는 박하다. 고이즈미 개혁의 지표였던 우정국 민영화 역시 마찬가지.

우정국이 부실해진 건 자민당 정부가 국채를 과다하게 떠맡긴 탓으로, 자민당을 개혁할 일이지 서민들의 예금고를 불안하게 하면서 우정국을 해체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 내 파벌 해체는 치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필자는 자민당이 고이즈미 독재당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고이즈미 칠드런(children)’이라 불리는 직계 의원 수가 구세력 최대 파벌이었던 다나카파(派)를 훨씬 능가하는 상황에서 당의 민주화는 요원한 일이라는 진단이다.

평론을 연재하는 와중에 다치바나의 몇몇 정국 예측은 빗나가기도 한다. 2005년 총선에서 자민당의 압승을 예상하지 못했고, 고이즈미가 약속한 대로 올 9월에 물러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고이즈미를 향한 ‘분노’가 명 평론가의 눈을 흐린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고이즈미가 퇴임하면 분명히 다나카처럼 막후의 킹메이커로 군림할 것이라는 그의 장담이 들어맞을지 보는 것은 또 다른 흥미거리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