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와 파스타, 스테이크와 와인 한 잔, 그리고 새하얀 테이블보에 럭셔리한 인테리어, 여기에 종업원의 정중한 서비스가 곁들여진다면···. 여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누릴 수 있는 맛과 멋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꼭 그렇기만 한 걸까. 그냥 가볍게 들러 피자나 파스타, 거기에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없으란 법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곳들을 보통 ‘트라토리아’라고 부른다. 반대로 격식이 있는 다이닝 공간은 ‘리스토란테’라고 한다.

서울 대학로에 자리한 ‘일 피노’는 트라토리아 같은 곳이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를 써는 기분보다는 가볍게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드는 것이 더 어울린다.

일 피노는 이탈리아어로 소나무라는 뜻. 대학로와 연결되는 소나무길 초입에 위치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지난 여름 문을 연 이곳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메뉴들은 특이하게도 맵다. 피자건 파스타건 맵게 만든 음식들이 인기 메뉴로 자리잡았다.

‘붉은 악마’로 불리는 파스타가 대표적. 토마토 소스에 이탈리아 고추와 마늘이 듬뿍 들어가 보기부터 붉은 색깔을 띤다. 한 입 먹어 보면 입안이 얼얼하다. 길다란 스파게티와 짧고 굵은 파스타 종류인 펜네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이보다 덜 매운 종류를 원한다면 ‘아마트리치아나’를 고르면 된다. 이탈리아 고춧가루를 역시 토마토 소스에 살짝 넣어 매운 맛이 약하게 나도록 했다. 베이컨과 양파 조각도 레드와인 소스에 적당히 묻혀져 있다.

많은 이들이 느끼하다고 흔히 말하는 ‘블루 치즈’가 들어간 고르곤졸라도 이 집에서는 그리 느끼하지 않다. 오히려 고소하면서도 담백하다.

피자 역시 매콤한 맛의 ‘시실리나’가 인기 높다. 토마토와 케이퍼 앤초비 올리브칠리가 토핑으로 얹혀져 있는데 이탈리아 고추 맛이 가미돼 살짝 매운 맛을 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야채로 꼽히는 르꼴라를 토핑으로 얹은 르꼴라피자도 이곳이 자랑하는 메뉴. 모두 주방의 화덕에서 구워낸 얇은 ‘씬 피자’들이다.

비교적 간단한 메뉴들로 구성돼 있지만 요리진은 탄탄하다. 특급호텔 출신의 조리장이 주방을 맡고 있어서인지 실력이 배어난다. 맛에서도 수준을 느낄 수 있지만 음식을 그릇에 내어 오는 솜씨에서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실내를 붉은 벽돌과 마루 바닥으로 단장,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 이곳은 1, 2층에 걸쳐 테라스를 구비하고 있다. 옥상 공간인 3층은 아예 야외 테라스로 꾸며져 날씨가 따뜻한 날에는 손님들이 먼저 찾아와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메뉴 토마토와 크림, 미트소스 등 3가지 부류의 파스타는 8,000원부터. 2인용인 10인치 크기의 피자는 1만500원부터. 샐러드나 수프, 파스타, 피자, 음료와 아이스크림으로 구성된 런치 세트메뉴는 1만9,500원(2인용). 중저가 가격대가 대부분인 와인은 2만5,000원부터, 하우스와인은 한 잔에 2,500원.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 4번 출구 중간 대학로 소나무길 초입. (02) 742-8997


글ㆍ사진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