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드디어 나도 백수탈출에 성공했다. 회사는 뉴욕 월가(街)에 있다. 출근한 지 두 달째. 다행히 사는 집에서 가까워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월가의 아침은 긴장과 활기로 넘친다. 지하철은 오전 8시 30분까지 크게 붐비고 그 때가 지나면 한산한 편이다. 깔끔하게 차려 입은 직장인 부대가 아무 말 없이 거대한 월스트리트역을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뉴요커들은 대개 부지런하고 운동을 좋아한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에 근처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는 직장인들이 무척 많다. 월가에는 두 개의 대형 체육관이 있다. 나도 회원으로 등록을 해 출근 전에 들르지만 30분을 채 넘기지 못하는 데 비해 뉴요커들은 새벽부터 나와 운동을 하기 때문에 체육관 안은 늘 열기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출근 시간은 9시30분까지. 다른 회사들보다는 다소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규모는 작아도 사장은 자그마치 3명이다. 가장 젊은 사장이 실세이고, 나머지 두 명의 사장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다.

회사 업무는 대체로 주 초반에 바쁘고 목요일이 지나가면 사장도 거의 출근하지 않아 사내 분위기가 느슨해진다. 나의 상사는 젊은 캐나다 남자로 무척 친절하다. 태어난 지 3주밖에 안된 애기를 둔 신혼 신랑이다. 평소에 잘 웃고 일을 가르쳐줄 때도 선생님처럼 자상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아랫사람은 편하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상사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주말을 앞둔 때문인지 화기가 넘친다. 생일을 맞은 직원이 있으면 케익이랑 맥주를 사와서 파티를 열어준다. 그렇지 않으면 팝콘을 튀겨와 같이 먹으면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대학 다닐 때 매주 금요일 오후에 열린 ‘happy hour’와 비슷하다.

간혹 대화의 시간이 길어져, 금요일 저녁에 외부 사람과 약속을 했다간 난처한 입장에 빠지기 십상이다. 신입사원이라 대화 중에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다. 그래도 한번씩 이렇게 대화의 시간을 통해 긴장도 풀고, 동료들의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 아직까지 그냥 듣기만 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일주일이 후딱 지나간다. 직장생활이란 게 참 단순하지만 시간은 무척 빨리 가는 것 같다.

유지연 통신원 (미국 뉴욕 거주)


투표율 높이기 '상금 이벤트'

뜨거웠던 미국의 중간선거도 끝났다. 언론이 일찌감치 민주당의 승리를 점치기는 했어도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주지사도 과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승할 줄이야···. 그만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오만한 일방주의 외교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염증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사는 동안 선거를 여러 번 지켜봤다. 이번 중간선거도 예전과 다름없이, 아니 그 이상으로 엄청난 돈이 뿌려진 선거였다고 한다. 지난 3일 AP통신은 '정치 체계가 돈으로 넘쳐난다(Political system Flush with Cash)'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중간선거에서 모두 26억 달러(한화 약 2조4,500억원)의 돈이 사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의 금융제재로 동결된 자금 몇 백억원 때문에 핵실험을 했다는 일부 보도와 비교해보면 이번 선거에서 미국이 쏟아부은 돈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미국의 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해 씁쓸하다.

미국의 투표 풍경이 한국과 다른 건 선거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해서 유권자의 투표를 유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점심시간이나 혹은 퇴근 후 귀가 시간에 정해진 투표장소에 가서 투표를 한다. 당연히 미국도 저조한 투표율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아리조나주에서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명을 추첨하여 100만 달러(약 9억5,000만원) 의 상금을 주는 이벤트를 도입하였다. 역시 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는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도 젊은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정치 냉소주의로 인해 투표율이 낮다고 하는데 그런 이벤트를 도입하면 어떨까. 아마도 투표율이 올라가지 않을까.

정철민 통신원(미국 인디애나 대학 재학)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