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생략과 속도감… 역시 오태석!

권력에의 광기보다 더 끈질긴 것이 있을까? 연출가 오태석은 ‘있다. 또는 그 이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국립극단에 의해 무대에 올려진 연극 <태(胎)>는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파란 많은 권력사의 한 단면을 다른 각도에서 투시하고 있다. 생명 계승에 대한 불가항력의 섭리에서 오태석의 답을 읽을 수 있다.

<태>는 1974년에 초연된 이래 꾸준히 관객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최근 33년 만의 개작과 함께 ‘국가브랜드 연극’이라는 인증서를 달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사건을 배경으로 삶의 본질을 되묻고 있다.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가 권좌에 오른다. 박중림(사육신 박팽년의 아버지)의 손부는 세조에게 출산을 허락해 주기를 간청하고, 세조는 딸을 낳을 경우에만 살려주겠노라 약속한다. 손부는 아들을 출산한다. 이를 본 종(從)은 자신의 갓난 아들과 바꿔치기 하며 박중림의 후손을 살린다.

신숙주는 훗날의 화근을 없애려 금성대군에게 왕방연을 보낸다. 왕방연은 고심 끝에 어명을 사칭하여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지만, 오히려 단종의 칼에 죽는다. 의경세자와 왕방연을 죽인 단종은 신숙주에 의해 목숨을 잃고, 결국 종의 실토로 아기의 정체가 밝혀진 가운데 예종 앞에 선 손부는 자신의 시조부를 죽이면서까지 아기의 생명을 감싼다. 예종은 하늘의 뜻이 사람의 의지와 다름을 깨닫고 그를 살려보내며 일산이라는 이름을 준다.

비극

의 역사라는 육중한 소재를 선택하고도, 이를 매만지는 오태석의 솜씨는 확실히 남달라 보인다. 비장한 시대를 담았지만 지나치게 무겁거나 불편하지 않다. 이야기의 짜임새와 표현방식도 독특하다. 등장인물들의 시공을 초월한 개입과 교차, 생략과 조합, 그리고 상징과 강조 등이 자유롭게 구사되고 있다. 죽은 소헌왕후가 현신해 수양대군과 대면한다든가 손부의 출산 광경을 세조가 다가와 지켜보는 등의 설정들은 연극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묘미다.

내용의 흐름도 시종 빠르게 진행된다. 한 장면 한 장면마다 관객을 빠른 속도로 몰입케 하는 오태석의 최면술이 놀랍다. 장면당 등장하는 배우가 평균 10여 명에 이르지만, 전혀 산만하거나 부산함을 느낄 수 없다. 배우들의 일사불란한 호흡, 정교하게 짜여진 동선은 마치 군무처럼 아름답기마저 하다. 잘 계산된 연출의 결과다.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태>가 가진 매력이다. 원로배우 장민호, 백성희를 필두로 실력파 배우들의 열연이 극을 생동감 있게 꿈틀거리게 한다.

한편 과감한 생략과 절제는 이 연극의 강점이면서 일면 아쉬움을 던져주기도 한다. 특히 음악이나 음향효과, 조명 등 극적 효과를 높여 줄 주변 장치들이 지나치게 간소화된 감이 없지 않다. 가능한 한 인공첨가물없이 원재료의 순도와 품질만으로 정면승부하겠다는 뜻일까? 한지 한복으로 보여준 실험성과 멋스러움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다.

그러나 이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행운임은 분명하다. <태>가 말하듯, 권력의 피바람 속에서도 생명은 이어지고, 전장의 폐허 속에서도 꽃은 피고 씨앗은 흩날린다. 척박한 국내 연극환경 속에서 우리 손으로 우리 것을 다룬 이만한 수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