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열창… 2% 부족한 연기

미국 팝계의 여제, 마돈나는 한때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공적’이었다. 섹시스타로 군림해 온 그가 영화 <에비타>의 주인공인 에바 페론 역을 맡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성녀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마돈나의 불꽃같은 연기와 노래는 전 세계의 모든 안티팬들을 일시에 투항시켰다. 에비타의 신화가 한국에도 이어질까?

토니상 7개 부문을 석권한 대작, 뮤지컬 <에비타>가 국내 무대에 선보였다.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명곡들로도 이미 많은 추종자들을 낳은 작품이다. 팀 라이스 작사, 해럴드 프린스 연출의 원작 <에비타>가 공식적인 라이선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에바 페론의 서거 소식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시골 유흥가 골목에서 출발해 권좌의 핵심부까지 오른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인 에바 페론의 인생과 사랑, 정치적 욕망, 죽음을 그리고 있다. 암울한 아르헨티나의 사회상과 에바 페론의 파란만장한 삶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를 우리 무대로 옮기면 어떨까? 배해일 연출의 이번 공연은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역량 있는 국내 정상급 뮤지컬 스타들이 전면에 기용됐다. 배해선과 김선영, 남경주, 송영창이 각각 에바 페론(공동 주연), 체 게바라, 페론 역을 맡았고, 그 외에도 김소향, 박상진, 우금지 등이 출연했다.

공연의 핵을 이루는 주연 3인의 가창력은 가히 명불허전(名不虛傳).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폭발하는 듯한 배해선의 화려한 열창, 그리고 남경주의 안정된 호흡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장장 2시간 가까이 쉼없이 이어지는 수십 곡의 레파토리를 무리없이 소화해 낸 것만으로도 갈채를 받을 만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전개와 함께 변화무쌍한 무대미술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이트 클럽 뒷골목이 일순간 주택가로 변하는가 하면 갑자기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내려앉기도 한다. 무대 진행도 오차없이 매끄럽다. 물론 오케스트라에게도 박수를!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명곡들을 생생한 실황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흔치 않은 선물이다.

다만 공연의 미덕은 대략 여기까지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몇몇 흠이 눈에 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연기력의 부재 또는 부족이다. 배우들의 모든 에너지가 오직 노래와 동선에 쏠려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얼굴이나 몸짓에서 감정을 읽기가 어렵다. 공연 전 어느 인터뷰에서 ‘표정 연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 한 배우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가시와 향기를 동시에 품은 에바 페론이 되기엔 배해선의 한계가 엿보였고, 남경주 역시 예의 노련함이 빛났지만 체 게바라만의 색깔을 내기엔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민중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또한 실루엣 역할에 머무르는 아쉬움을 남겼다. 의상과 분장도 각 배역이 요구하는 특성을 살리기에는 다소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 <에비타>의 보석은, 어쨌든 있다. 관객들은 각자 가슴에 무엇을 담아갔을까? 겨울이 다하기 전에, 개인적으로는 를 한번 들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한국의 에비타가 부르는 버전은 원곡에도 손색이 없다. 에바가 페론에게 사랑을 고하는 노래다.

공연은 2007년 2월 1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