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초라 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보았음직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자라고 있는 진짜 고란초무리를 만나보는 일은 쉽지 않다. 혹, 고란초를 꼭 한번 보고 싶다면 지금이 바로 적기이다. 봄이면 새로 피어나는 고운 봄꽃에,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에, 눈과 마음이 먼저 팔려 고란초까지 마음을 둘 여지가 없을 터이다. 더구나 여름엔 산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에 가려 바위틈에 조금씩 달려 살아가는 고란초무리가 눈에 들어오기 어려울 성싶다. 그러나 눈 덮인 산은 발이 너무 조심스러우니 마음도 눈도 발도 가리지 않는 이즈음이 상록성의 작은 잎을 가진, 꽃도 없는 이 풀을 보는 적기라 할 수 있다.

고란초는 양치식물이다. 꽃을 피워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아 꽃가루받이를 하고 씨앗을 맺는 종자식물이 아니라, 포자로 번식하는 원시적인 식물이다. 잎의 뒷면을 보면 갈색의 동그란 포자주머니들이 줄줄이 나란히 달려있다.

자라는 곳은 주로 다소 그늘진 숲속의 바위틈이다. 더러 바위틈이 아닌 돌이 많은 경사면의 흙이 있는 곳에서도 자란다.

잎의 모양은 다양하다. 길이가 1cm 조금 넘을 듯 달걀 모양의 동글동글한 잎에서부터 10cm가 넘는 긴 잎들도 있고 남쪽의 일부 자생지에서는 아예 잎이 세 갈래로 깊이 갈라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에 서로 상인한 고란초 모양을 보고 다른 식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더 길쭉한 선형의 일엽초와 혼동하기도 한다.

고란초란 이름은 충남 부여의 고란사 뒤편 절벽에서 처음 발견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도 이곳에 있다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나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유명한 식물인 만큼 떠도는 이야기도 많다. 원효대사가 백강(白江) 물을 마셔 보고 상류에 진란(眞蘭)과 고란(皐蘭)이 있음을 알고 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발견하였다고 하는데, 그후 진란은 사라지고 고란만 전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고란초는 난초와 전혀 무관한 식물이다. 그러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고란사(皐蘭寺) 뒤에 있는 약수를 백제 왕실에서 길어다 마실 때 이 잎을 띄워 오게 했다. 그 이유는 물맛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약수를 떠오는 사람이 귀찮아 다른 곳의 샘물을 길어오자 진위의 증거로 삼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여러 이야기가 전해온다는 것은 그만큼 친근하게 생각되었던 식물이라는 뜻이다.

한때 고란초는 법적인 보호를 받는 희귀식물로 지정되었다. 귀하기로 치자면 같은 고란초 집안 중에서도 층층고란초나 큰고란초가 훨씬 보기 어려운 식물인데 유독 이 식물이 보호를 받았던 이유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그 같은 유명세 탓이다. 그러다보니 욕심 많고 몰지각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 훼손당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즈음엔 여기저기서 많은 이들이 자생지를 찾아내어 그 분포지가 아주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종기가 나거나 상처가 깊을 때 혹은 이뇨제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약으로 쓸 만큼 많지 않았으니 이러한 쓰임새로는 이용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오히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돌에 붙여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슴이 답답하거들랑 서늘한 초겨울 바람을 맞으며 고란초 구경 한번 떠나볼 일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