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오리지널 팀의 ‘너무 빠른’ 내한 공연으로 화제를 모은 ‘돈 주앙’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캐나다와 프랑스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대로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돈 주앙’은 ‘노트르담 파리’로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을 알린 질 마으가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 캐나다 초연 당시 셀린 디온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일으킨 프랑스 노래들로 극을 끌어간다는 점, 스페인의 정열적인 플라멩코 군무가 선보인다는 점까지 국내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뮤지컬은 그야말로 대작다웠다. 정열적인 집시의 군무는 확실히 볼거리다. 불타는 태양과 뜨거운 피가 녹아있는 스페인의 열정은 2시간 내내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어 놓을 만큼 화려하고 관능적이다. 2004년 캐나다 퀘벡 음악차트에서 17주간 연속 1위를 차지한 ‘샹제’ 등 프랑스 국민 가수 겸 작곡가 펠릭스 그레의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도 풍성한 감성과 품격을 보여준다.

또 주목할 것이 프랑스 특유의 예술 감각이 살아 있는 무대 조명이다. 특히 돈 주앙과 마리아의 약혼남 라파엘이 벌이는 결투에서 비 오는 장면의 연출은 마치 마술을 보는 듯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완벽한 댄스와 플라멩코의 경쾌한 발구름 동작 등을 위해 프랑스에서 공수된 나무 재질의 원형무대도 놓치기엔 아까운 공연의 묘미다. 댄서들의 발구름판 역할을 하며 타악의 흥겨움을 더한다. 역시 질 마으의 명성은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역동적인 무대 창조를 통해 감동의 크기는 배가 된다.

그러나 돈 주앙 역의 장 프랑수아 브로나 마리아 역의 장비에의 연기는 다소 밋밋해 못내 아쉽다. 운명적인 사랑에 던져진 애절함을 전해주기에는 다소 감흥이 적었던 것. 그러나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장 프랑수아 브로가 지닌 남성적 스타일 자체의 빼어남은 높이 살 만하다. 연기력의 아쉬움을 잊게 할 정도로 섹시한 남성미는 여성들의 넋을 빼앗았다. 뮤지컬은 스페인의 전설적인 호색한 돈 주앙이 그가 희롱한 여자의 아버지인 기사를 죽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어서 동상이 된 기사는 돈 주앙에게 저주를 내리는데, 그것이 바로 파국적 사랑이다.

여기에는 평단의 찬반이 엇갈린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욕망의 화신이, 사랑 때문에 죽음도 불사하는 로맨티스트로 변모한 것. 때문에 악마적 본성의 치명적 매력은 반감된 면이 적지않다.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과 비극적 결말이라는 상투적인 설정은 묘하게도 팍팍한 시대의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겐 여전히 유효한 판타지로 힘을 발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뜨거운 기립박수와 환호성으로 장식됐다. 1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 501-1377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