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웰치식 경영이 퇴물 취급을 받는 시대라지만 “시장 1, 2위가 아닌 사업은 모두 정리하라”는 그의 호방한 구호에 몸을 움찔하지 않을 경영자는 드물다. 시장은 점유율을 0.1%라도 더 높이려는 기업들의 악전고투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특히 치킨 게임을 연상시키는 가격 인하 경쟁은 시장점유율을 지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기업 문화가 만들어낸 살풍경이다.

현대 유럽 경영학의 자존심으로 평가 받는 저자는 이 처절한 상황에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면서 현자의 질문을 던진다. 대체 기업은 왜 상품을 만들어 파는가. 경영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현자는 날카롭게 되묻는다. 시장점유율을 높이니 이익이 커지더냐. 그들은 머뭇거릴 것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가격 인하 카드를 꺼내드는 동안 이윤은 속절없이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좀체 오를 기미가 안 보이는 시장점유율에 전력하는 동안 기업이 놓치는 이익은 자그만치 연 매출액의 3%에 이른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이런 지적에 맞서 일부 독자는 거대 기업이 저가 정책을 통해 시장을 쉽사리 독과점으로 재편하는 현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저자는 논의의 한계를 미리 밝히며 반론의 예봉을 피한다. 자신이 상정하는 시장은 수요가 안정적이고 경쟁사들이 각자 영역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성숙시장 혹은 포화시장이라는 것. (이익)=(이익률)×(시장점유율)×(시장규모)라는 상식적 상관관계에서 성숙시장의 시장점유율과 시장규모는 상수에 가깝다. 기업이 통제할 여지가 있는 요소는 이익률 뿐인데, 이를 높이려면 가격을 인상-혹은 비용을 절감-하는 게 불가피하다. 이쯤에서 논지는 분명해진다. “성숙시장의 기업들이여, 가격을 올려 이윤을 높여라!”

일선 경영자를 위한 지침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하는데 공을 들인다. 프로그램은 ▲경영 패러다임 전환 ▲고객 및 시장 데이터 수집·분석 ▲이윤 위주로 마케팅 전략 조정 ▲이익 지속을 위한 조치 등 4단계로 구성된다. 마케팅 컨설팅사 CEO이기도 한 저자는 자사가 수행해온 프로젝트를 실천 사례로 풍부하게 제시한다. 이 정교한 지침에 담긴 메시지를 거칠게나마 요약하자면 ‘경쟁기업 및 소비자를 좀 더 이윤 추구 관점에서 대하라는 것’이다.

우선 경쟁기업과 가급적 경쟁을 피하라는 주문이 눈에 띈다. 상대방이 먼저 가격을 내리며 공세를 취할지라도 시장 경쟁력에서 비교 우위에 있다면 맞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자사 상품을 이윤 많은 고급 브랜드로 차별화한 사례를 여럿 제시한다. 노련한 기업이라면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올 기미가 보이는 즉시 강력한 구두 경고를 보내 소모적 경쟁을 예방할 수도 있다. 이처럼 평화롭게 경쟁하는 전략-“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이란 손자(孫子)의 제언을 떠올리게 하는-은 최근 유력한 경영지침으로 부상한 블루오션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또 기업이 고객의 환심을 사려 무작정 가격을 깎아 주거나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스스로 이익을 잠식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그런 순응적 태도는 고객의 기대를 부풀려 재차 가격 인하→수익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을 뿐더러 가격이 지닌 공신력을 무너뜨리고 만다는 설명이다. 대책은 ‘지피지기해서 백전백승’하는 것. 꼼꼼한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 선호도와 지불 의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선결과제다. 이를 토대로 기업은 고객층을 세분화해서 각 부류별로 유리한 가격정책을 쓸 수 있다. 나아가 저자는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꼭 이윤에 보탬이 되는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과감히 줄이는 걸 주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경영 지침서이지만 대부분 시간을 소비자로 살아가는 독자도 지피지기 차원에서 읽어볼 만하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조차 기업이 상품 내재가치를 초과하는 가격을 충분히 매길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자가 인용한 기업들이 대부분 해당 업계 선두주자라는 점이다. 적들의 공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면서 이윤도 높이는 그들의 내공은 ‘2류 기업’에겐 언감생심인가 싶어서 말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