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빛 열매엔 새날 기다리는 연둣빛 꿈이…

죽절초는 새해를 맞은 이 즈음과 아주 잘 어울리는 식물이다. 우선 언제나 푸른 나무이어서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싱그런 마음을 전해주어 좋다. 더욱이 잘 키운 죽절초는 진초록이기보다는 다소 연한 연둣빛을 띠고 있어 새록새록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지난 여름 있는 듯 없는 듯 피었던, 아주 연한 녹색기운이 감도는 우윳빛 작은 꽃송이들이 이제 추위를 견뎌내고 구슬 같은 열매로 송글송글 맺혀 있다. 이 열매 역시 진한 붉은빛이 아닌 주홍빛으로 아주 밝아 신년에 더욱 보기에 즐겁다. 아직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잘 키워 보급하면 아주 좋은 겨울철 실내식물이 될 듯하다.

죽절초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아주 희귀한 식물이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생지가 제주도의 극히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자라는 탓에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소중한 식물이다. 자라는 곳은 제주도의 서귀포 천제연 폭포가 떨어지는 숲속인데, 어느 귀퉁이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몇 포기 있으려니 생각하면 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확인된 개체 수는 20여 포기에 불과했다. 다행히 최근 다른 지역에서 좀 더 큰 군락이 발견되어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그래도 죽절초는 여전히 귀하다. 한때 이 식물을 증식하여 자생지에 복원하는 일을 시도하기도 했다. 사실 많은 희귀식물들은 기르기에 유난히 까다롭고 독특하여 보편화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죽절초는 그리 어렵지 않게, 그리고 아름답고 싱그럽게 키울 수 있으니 반갑다. 이 죽절초를 우리가 잘 키우고 가꾸어 쉽게 살 수 있는 식물로 널리 보급하면 굳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자생지를 훼손할 일도 저절로 없어질 터이니 더없이 일거양득 좋은 일일 것이다.

죽절초는 홀아비꽃대과에 속하는 늘푸른 작은키나무이다. 긴 타원형의 잎은 마주 달리고 가장자리엔 굵은 톱니가 있으며 표면은 반질거린다. 꽃은 이른 여름에 핀다. 꽃잎도 꽃받침도 없이 수술과 암술이 1개씩 달린 작은 꽃으로, 대여섯 개에서 열개 정도까지 자루없이 꽃차례에 나란히 달린다. 그리고 열매는 안에 딱딱한 씨앗이 들어 있는 핵과로 익어 이듬해 봄이 오기 전까지 오래도록 매달려 있다.

죽절초란 이름이 다소 낯설 듯도 하다. 흔치 않은 식물이니 당연하다. 죽절초란 이름은 줄기에 대나무 같은 마디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름 끝에 ‘초(草)’가 들어 있어 풀로 착각하기 쉬우나 어엿한 나무이다. 다만 나무이긴 하나 대나무처럼 크게 자라는 종류가 아니라 풀처럼 여리고 작게 크는 작은키나무여서 그리 부른다.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일이 사계절의 순환처럼 어김없이 찾아온다. 가진 것을 모두 땅으로 되돌려주며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새봄이면 희망에 가득 찬 새순을 올려내는 때를 아는 나무처럼, 혹은 풀처럼, 우리도 그렇게 묵은 감정을 비우고 차분히 정해년(丁亥年) 새날을 맞았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