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맛 얼큰한 육수 '뱃속이 뜨끈'

얼큰한 국물에 적당히 어우러진 야채, 그리고 약간의 고기 살점들. 한참이 지나도 여전히 뜨끈한 뚝배기에 담긴 육개장의 풍미다.

대표적인 전통 한식인 육개장을 잘한다는 집은 요즘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다른 종류의 먹거리가 워낙 많아져 선택의 폭이 늘어난 탓도 크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제대로 된 육개장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 진짜 이유다.

서울의 패션 1번가인 청담동에 육개장을 제대로 하는 음식점이 들어섰다. ‘하녹’, 여름 ‘夏’, 푸를 ‘綠’자를 썼는데 우리 전통 ‘한옥’과도 발음이 비슷하다.

육개장을 잘 만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좋은 재료를 확보하는 것. 육개장에 어울리는 고기와 국물을 갖출 수 있어야 하는데 하녹이 그게 가능한 것은 고기집이기 때문이다. 멋을 내세운 근사한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청담동에 고기를 구워 먹고 전통 메뉴를 내세운 레스토랑이 들어섰다는 것도 눈길은 끌 만하다.

육개장 맛의 기본은 역시 육수. 이 집에서는 양지와 소 잡뼈들을 고아 국물을 낸다. 진하고 깊으면서도 시원한 맛이 우러난다.

그리고 육개장 맛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대기.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데 소 기름, 그것도 소의 콩팥 옆에 붙은 기름을 기본으로 한다. 소가 가진 여러 기름 중에서도 유독 새하얀 색상이 두드러진 이 기름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태 기름’으로 불린다.

불순물이 거의 없어 녹이면 맑고 깨끗한 액체가 돼버리는 두태 기름에 태양초 고추가루와 후추, 마늘, 생강 등을 튀겨내면 다대기가 만들어진다. 너무 진하지도 묽어 보이지도 않으면서 어느 정도 붉은 색을 띠도록 만드는 것이 비법.

또 중요한 것은 소위 ‘건더기’. 적당히 씹을 만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고기와 야채를 말한다. 야채는 토란대와 고사리, 숙주 세 가지인데 모두 육개장에 잘 어울리는 3인방이다. 주방에서 끓일 때 야채가 무르익을 시점에 다대기를 넣으면 새로운 맛의 조합이 이뤄진다.

특히 가늘고 기다랗게 찢어진 고기 살점이 눈에 띈다. 소 갈비 등짝에 얇다랗게 붙어 있는 부위만을 쓴 것. 소고기 전문가들 사이에서 ‘어찜육’으로 통하는 이 부위는 흔히 ‘어북살’로도 불린다. 전통적으로 육개장 전문으로 쓰인다는 이 부위는 아무리 삶아도 붉은 색을 띠는 것으로 유명하다. 뚝배기 안에서도 행여 덜 삶아 빨갛지 않을까 염려할 수 있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리고 국물 위에 얹어진 고명인 황백지단과 대파.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마름모 모양으로 썰은 황백지단의 노란색과 하얀색, 그리고 대파의 푸른 색은 불그스름한 국물과 맛뿐 아니라 멋에서도 조화를 이룬다.

전통 육개장 방식을 고집하는 이는 최병문 조리장이다. 갈비와 고기집 경력만 21년이 넘는 그는 2000년 독일 하노버 환경올림픽과 프랑스 뒤종에서 열린 세계음식박람회에서 한식 주방을 맡기도 했다. 일반 기름에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어 만드는 ‘그럴싸한’ 육개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하지만 이 집 육개장은 하루 20~30그릇으로 한정돼 있다. 구이로 주로 사용되는 소 통갈비에서 나오는 재료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갈비탕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지해장국이나 육회비빔밥, 불고기정식이 준비돼 있다. 특히 물냉면은 메밀 사리의 평양식으로, 비빔 냉면은 고구마 전분의 함흥식으로 따로 내놓는다. 한우 50마리 가운데 한 마리에만 해당된다는 A++ 최고 특등급의 암소등심 스페셜은 특미로 내세우는 대표 메뉴다.

메뉴 육개장과 갈비탕, 냉면류는 7,000원씩. 생고기, 소갈비, 육회 등 고기류는 3만6,000원부터. 와인 리스팅은 3만5,000원부터.

찾아가는 길 서울 청담초등학교 건너편 (02)3445-7857


글ㆍ사진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