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학, 제도경제학, 행동경제학 등은 백면서생 같은 고전경제학에 현실 감각을 찾으라고 충고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행동경제학은 냉혹한 이성만 지닌 ‘경제적 인간’에게 감정을 부여해 그를 현실의 범부들과 비슷한 모델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2002년 스웨덴 한림원은 행동경제학 이론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프로스펙트(prospect) 이론’ 주창자이자 인지심리학 교수인 다니엘 카너먼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함으로써 경제학과 심리학의 적절한 만남을 축복했다. 이 책은 카너먼과 그의 학문적 동지 트버스키가 수립한 이론을 다양한 현실 사례를 곁들여 쉽게 풀어 쓴, 대중적 행동경제학 입문서다.
이 책의 3장은 카너먼-트버스키가 1973년에 발표한 휴리스틱(heuristic) 이론에 관한 내용이다. 휴리스틱은 ‘자기 발견적인’이란 뜻의 형용사로, 두 사람은 ‘불확실한 조건에서 판단을 내릴 때 의존하는 그럴 듯한 경험이나 방법’이란 의미로 쓴다. 휴리스틱은 적절한 판단으로 이끌기도 하고 실수를 저지르게 하기도 한다.
타율이 2할5푼인 타자가 3타수 무안타이므로 “확률상 다음 타석에서 안타를 칠 거야”라고 장담할 때 우리는 평균(타율)이란 휴리스틱에 속고 있는 셈이다. 물건을 팔 땐 가격을 높게, 살 땐 낮게 부르고 시작하라는 거래의 기초 역시 처음 제시된 값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비합리성을 역이용한 것이다. 경제적 인간이라면 절대 범하지 않을 실수들이지만, 주변에선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 풍경이다.
행동경제학의 두 선구자들이 79년에 선뵌 프로스펙트 이론은 4장에서 다뤄진다. 고전경제학의 핵심인 기대효용이론을 휘청거리게 한 이 기념비적 이론은 가치-이익을 두 축으로 한 사분면에 원점을 지나는 S자형 곡선으로 표현된다. 자세한 수학적 설명은 미뤄두고 이 곡선이 의미하는 바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준거점 의존 ▲민감도 체감 ▲손실 회피다. 합리적 이성을 자랑하는 인간이라면 절대 품지 않을 선택이다. 각각을 실감할 만한 사례로 표현해보자. 재산이 1,000만원에서 1,100만원으로 늘어난 사람은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줄어든 사람보다 행복하다(준거점 이론). 손에 쥘 가능성이 80%인 4,000원(기대값=4,000원×0.8=3,200원)보다 확실한 3,000원을 택한다(민감도 체감). 1,000원을 얻은 기쁨보다 1,000원을 잃은 언짢음이 2~2.5배 크다(손실 회피).
5장에서 저자는 다양한 행동 실험 결과를 해석하면서 프로스펙트 이론의 현실 적합성을 보여준다. 읽다보면 우리가 왜 휴대전화 요금상품을 바꿔보라는 텔레마케터의 요구를 계속 묵살하는지, 본봉이 삭감되면 우울한데 보너스가 그만큼 깎이는 건 왜 참을 만한지 등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티켓이 5만원인 공연 현장에서 돈 5만원을 잃어버린 사람은 표를 사지만 예매한 티켓을 분실한 사람은 그냥 집에 돌아온다. 자기 돈을 한 푼도 기부하지 않으면 최소한 손해는 안보는 게임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기적 행동을 우려하면서도 일정액을 내놓곤 한다.
실제 실험으로 입증됐고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례들이지만 고전경제학의 틀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고전경제학의 맹점을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을 보조도구 삼아 훌륭히 메워준다. 그런 면에서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을 대체한다기보다는 그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켜주는 학문이라 하겠다. 사례 위주로 가급적 쉽게 설명하려 애쓰면서 이 책은 입문서의 본분을 다한다. 하지만 번역에는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들다. 덜 다듬어진 용어나 문맥이 자주 돌출하는 탓에 독서의 흐름이 영 매끄럽지가 않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