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박한 미국 문화를 조롱하다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문화대국 미국의 오만을 비판한 세미 다큐"저열한 코미디" "고도의 정치풍자" 엇갈린 평가 속 美 등서 인기

2006년을 빛낸 '올해의 인물'을 뽑는 시상식이 있다면? 영화 분야에서는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이하 <보랏>)의 주인공 '보랏'은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영국 코미디언 샤샤 바론 코헨이 연기한 주인공 보랏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06년 주요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생소한 중앙아시아 국가의 얼치기 남자가 대체 어떤 대단한 일을 했을까? 어느 모로 보나 킹카로 믿기 힘든 이 기상천외한 남자는 좀처럼 남을 배려하거나 시선을 의식하는 법이 없다. 매사 거침없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듯한 그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신랄한 풍자와 아이러니, 독설로 이뤄진 고도의 전략 코미디라는 주장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센세이셔널한 이슈를 낳고 있는 <보랏>은 지난 한 해 만들어진, 가장 뜨겁고 논쟁적이며 웃긴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파멜라 앤더슨은 나의 것 <보랏>은 카자흐스탄 TV 리포터 보랏이 생면부지의 미국 땅을 밟은 뒤, 할리우드 여배우 파멜라 앤더슨을 아내로 삼기 위해

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벌어지는 각양각색 사건들을 다룬 코미디 영화다. 서구인들에게는 그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카자흐스탄에서 여섯 번째 미남인 국영 방송국 리포터 보랏(사샤 바론 코헨)은 ‘'는 거국적 소임을 띄고 뉴욕으로 떠난다. 제3세계 주변인이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는 뉴욕 땅에 발을 디뎠으니 주눅이 들 만도 하건만 이 대범한 남자에게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강간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여동생과의 근친상간도 서슴지 않는 카자흐스탄에서 단련된 그는 지나가는 여자의 몸값을 흥정하고, 백주대낮 대로에서 용변을 보는가 하면, 카자흐스탄에서 여자의 뇌는 다람쥐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폭탄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날 TV에 나온 파멜라 앤더슨을 본 보랏, 한눈에 자신을 사로잡은 이 글래머 여신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대책 없는 미국 대륙횡단 여행을 떠나게 된다.

<보랏>은 최근 들어 가장 많은 뉴스를 낳은 영화 중 하나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문제적 영화가 뿌린 화제만을 모아 놓아도, 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5월 칸영화제에서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래, 개봉하는 나라마다 거센 찬반 양론을 낳았으며 연말 각종 영화 관련 협회에서 선정된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얼마 전 끝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사샤 바론 코헨이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11월 미국 개봉 당시에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루마니아 마을 주민들이 근친상간과 매춘부가 들끓는 곳으로 마을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카자흐스탄인과 그들의 종교를 폄훼하고 공격한다는 이유로 러시아에서 상영금지를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선정적인 소재와 수위 높은 발언, 무차별적이고 고의로 저급한 유머를 동원해 불쾌함을 조장한다. 그렇다고 무뇌아적인 코미디로 몰아부치는 것은 너무 단세포적인 읽기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의 행렬 속에 <보랏>은 다층적인 해석과 소문을 낳았다.

미국 문화 조롱하기 <보랏>은 현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기상천외한 사고를

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은 보랏이 일으킨 사고만큼이나 다종다기하다. 인종차별, 성차별, 인분 유머, 신성모독 등 비판과 조롱에 성역은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영화는 거침없이 줄달음친다.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저열한 코미디라는 냉소와 고도의 정치풍자라는 환호가 동시에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견해들을 뒤로 하고 본다면, <보랏>은 간단히 해명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라는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경박한 미국문화가 세계를 어떻게 오염시키고 있는지를 반대 방향에서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과 성적 편견,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태도, 교활함은 미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로 취사선택된 특징들이다. 엉뚱하고 어리숙하게 보이는 카자흐스탄의 사고뭉치가 벌이는 사건들은 실은 고의적인 '퍼포먼스'나 '제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랏이 카자흐스탄에서 터득한 것처럼 보이는 행태들은 실은 미국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불균질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보랏>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어쩐지 번지 수를 잘 못 찾은 비판처럼 보인다.

특정한 행동이나 현상에 대한 과장어법이 반사적 강조가 될 수 있다는 걸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랏>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견해와 입장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미국 문화가 지닌 해독성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를 뒤틀린 방식으로 전시하는 고도의 유머를 구사한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편견들을 진정 추악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기묘한 거울효과를 만들어낸다.

<보랏>은 미국적인 것으로부터 파생된 그런 편견의 더미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으며 세계인들이 묵시적으로 그런 쓰레기에 오염돼 있다고 비웃는다. 조롱은 자각을 주지 않지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보랏의 황당무계한 여행은 웃음을 통한 정화의 여정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