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사랑 앞에서… 그는 야수가 된다

폭력, 마약, 여자, 살인···. 뮤지컬 ‘천사의 발톱’은 시작부터 거친 호흡을 강렬하게 뿜어낸다. 찌르고, 치고, 때리고, 여수의 스산한 항구를 배경으로 어둠의 느와르가 펼쳐진다. 경쾌하고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물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상당히 차가운 느낌의 뮤지컬에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무대의 암울함은 인간 본성의 이면을 자극하는 또 다른 매혹으로 다가온다.

한국판 ‘지킬 앤 하이드’로 불리는 이 작품은 우리의 내면 깊이 감춰져 있는 야수적 본성에 주목한다.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해 처절한 고통을 참으며 자신의 발톱을 뽑는 천사’라는 신화적 알레고리가 그 토대다.

밀수조직에서 잔인하고 위험한 삶을 살고 있는 이두. 우발적인 사고로 바보 같이 착한 형 일두를 찔러 죽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죄의식으로 울부짖던 이두는 우연히 발견한 아기 태풍을 키우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자기를 버린 채 죽은 형 일두로 살아간다. 그러나 2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중년이 된 이두 앞에 나타난 소녀 희진으로 인해 청춘의 열정과 사랑이 되살아나고, 질투는 숨겨왔던 잔인한 본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분출되는 분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파국 속으로 밀어넣는다.

3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배우 유준상은 천사와 악마의 화신인 일두와 이두 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름값을 했다. 희진을 두고 삼각 라인을 형성하는 태풍 역의 이신성은 물론, 마담과 조직 보스 등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주변 인물들도 열정의 무대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그리스’ 등에서 역량을 알린 원미솔이 음악 감독을, ‘남자충동’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재기 넘치는 상상력을 보여준 조광화가 작ㆍ연출을 맡았다.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 764-8760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