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객석은 '11월의 눈물'에 젖었습니다

윤효간 씨께.

전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당신의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공연제목이 <피아노와 이빨>이었던가요? 지난해 시작한 공연이 그사이 해를 넘기며, 3차에 걸친 앵콜 연장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세간의 소문을 들은 뒤였습니다.

객석의 조명이 꺼진 뒤, 희미한 빛 아래 악보도 없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연주무대로 소극장을 택한 건 정말 적절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주자도, 음악도, 감동도 관객들에게 더 가깝고 친밀한 ‘실물’ 그대로 다가왔으니까요. 첫 곡이 흘러나오면서부터 이미 당신은 관객들의 마음을 산 듯했습니다.

평화롭기도, 어찌 보면 애잔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해일처럼 거칠게 몰아치기도 하는, 마치 들판 한가운데서 한여름 시원한 장대비를 맞고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을 틔워주는 출발이었습니다. 물어보니 당신의 창작곡인 'November Tear'였더군요.

소문대로, 클래식은 당신 레파토리에 없었습니다. ‘Hey Jude’, ‘Last Carnival’, ‘Stairway to Heaven’등 귀에 익은 외국곡들과 ‘엄마야, 누나야’, ‘오빠생각’, ‘마법의 성’ 등이 당신의 손과 건반을 타고 차례로 흘러나왔습니다. 당신의 음악은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따스하다는 표현을 먼저 쓰고 싶은,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요, 당신의 편곡 실력을 기꺼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이따금 당신의 표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거의 200회에 가까운 연장 공연을 벌이면서도 마치 이제 막 첫 개막 공연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마치 자기 피아노를 갖기가 평생 소원이었던 어떤 소년이 방금 피아노를 선물받고서 종일 건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우연히 열린 연주실 문틈 사이로 한 피아니스트의 열연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맘에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당신의 음악 위로 유키 구라모토와 조지 윈스턴이 자꾸만 오버랩되더라는 것입니다. 혹시 다른 이들에게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아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피아노라는 동일 악기의 속성에다 각자의 음악관이 서로 비슷해서 그런 걸까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좀 더 생각해보니 다른 면이 있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들이 ‘고요’를 택했다면 당신에게선 뭔지 모를 ‘갈증’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제 분석이 틀렸다면 아마 그건 당신이 아니라 제게 어떤 갈증이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대부분 예술은 관람자 자신에게 결핍된 무엇을 건드릴 때 가장 크고 예민한 공감을 주는 것일 테니까요.

연주와 연주 사이 잠깐씩 무대로 나와 관객들에게 들려주던 당신 자신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콩쿠르에 참가했다가 당신만큼이나 또는 당신보다 더 피아노를 잘 치는 다른 아이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일, 아니 그보다도 스무 명이나 되는 그 참가자들의 연주가 마치 단 한 명이 연주를 하는 것처럼, 심지어 피아노를 치는 자세까지도 거짓말처럼 천편일률로 똑같은 것을 보고 더 충격을 받았던 일 등···. 여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날도 예외없이 종반부에 게스트 한 분을 모셨더군요. 약 10분의 짧은 대화였지만, 따사롭고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 연주를 마지막으로 듣고 공연장을 나섰습니다.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바깥엔 눈 한 뭉치,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더군요. 3년 전 모 방송사의 3부작 드라마 삽입곡으로 쓰였던, 당신이 직접 만들고 직접 부른 노래 ‘눈물’의 여운이 저의 집까지 졸졸 따라왔습니다. 2007년 12월까지 발렌타인 극장서 공연. 02-2659-6003


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