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 위해 사랑도 우정도 버리는 비정한 드라마 캐릭터 인기

하얀 거탑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경향이 바뀌고 있다.

멋진 외모에 착한 성격으로 여심을 사로 잡던 ‘백마 탄 왕자’가 주류를 이루던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의 전형이 최근 들어 악(惡)의 경향을 강하게 띄고 있다.

야심과 욕망을 위해 사랑과 우정을 이용하고 배신하는 비정한 캐릭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른바 ‘나쁜 남자’들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근사한 외모와 착한 성격의 기존 남자 주인공 캐릭터는 ‘나쁜 남자’를 측면 지원하는 캐릭터로 다소 뒷전에 밀려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안방극장을 장악한 나쁜 남자의 대표적인 캐릭터는 MBC 특별기획 <하얀거탑>의 김명민, SBS 수목 미니시리즈 <>의 이범수, SBS 월화 미니시리즈 <사랑하는 사람아>의 김동완, KBS 1TV 일일극 <하늘만큼 땅만큼>의 박해진, MBC 일일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이재룡 등이다.

이들은 오직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다. 사랑도 욕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가족, 연인, 친구 등은 욕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비정함을 보여준다. 이전의 드라마라면 이들 캐릭터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으로 주로 등장했다.

시청자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곤 했던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주인공으로 위치가 바뀐 지금 이들에게 비난은 없다. 오히려 시청자들은 이들을 응원하고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훈남(훈훈한 남자)’이라는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별명까지 얻고 있을 정도다.

<하얀거탑>에서 냉혹한 천재 외과 의사 장준혁으로 등장하는 김명민은 극 중에서 외과 과장이라는 성공을 위해 야비한 수단을 동원하는 권모술수를 보여주지만 시청자 응원을 한몸에 받았다.

외과 과정 선거전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쥐며 그를 응원했다. 외과 과장에 선출된 뒤 의료 사고로 환자를 죽음에 몰아 넣은 이후에도 시청자들은 그를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정도로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에서 역시 외과 의사로 등장하는 이범수 또한 메마른 감정으로 일에만 전념하는 캐릭터다. 뛰어난 의술을 지닌 탓에 동료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평소 같으면 ‘정떨어지는’ 캐릭터로 치부될 법도 하지만 시청자들은 열렬한 애정과 응원을 보낸다. 시청자들은 김명민과 이범수에게 각각 ‘구강명민’, ‘버럭범수’라는 애정 어린 4자(四字)별명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들 외에 김동완 또한 야망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연인을 배신했지만 비난보다 동정표를 많이 얻고 있는 상황이다. 지독한 불륜에 빠져 아내를 외면하는 이재룡 또한 사랑의 차원에서 용서를 얻고 있다.

이처럼 ‘나쁜 남자’들이 호응을 얻고 있는 배경엔 새로운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드라마의 신선한 전형을 제시하는 점이 있다. 그저 멋지고 착하기만 한 남자 주인공의 비현실성을 탈피해 현실적인 재미를 추구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얀거탑>의 안판석 PD는 “현실 속에서 선과 악은 혼재해 있다. 드라마들은 대체로 선과 악 캐릭터를 도식적으로 구분했기에 현실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준혁은 선과 악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현실적인 인물이기에 공감을 얻고 있다. 시청자들 또한 장준혁에 동화되며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방극장의 ‘나쁜 남자’ 바람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3월 이후 방송될 KBS 2TV <마왕>, MBC <고맙습니다> 등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역시 기존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와 확연히 구분된다.

<마왕>의 주지훈은 인권 변호사라는 신분을 가진 채 과거 가족을 죽음에 몰아넣은 사람들을 연달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다.

<고맙습니다>의 장혁 또한 오만방자한 의사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인물이다. 김명민, 이범수 등이 보여주는 ‘나쁜 남자’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들이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애정 어린 응원을 받기 위해선 현실성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런 숙제를 제쳐놓고라도 ‘나쁜 남자’ 캐릭터는 2007년 드라마의 새 아이콘으로 자리를 굳혀갈 분위기다.

외과의사 봉달희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