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지음 / 김석희 옮김

15년 4개월의 대장정. 1995년 제1권 한글판을 받아 든 국내 독자들은 로마 통사를 1년에 한 권씩 써내겠다는 저자의 말에 너무 긴 시간이 아닐까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로마가 ‘왜 망했는지’보다 ‘어떻게 흥했는지’를 알고 싶었다는 노작가의 열정은 지루함을 기다림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국내 출간 1~14권 총 538쇄, 250만부 돌파라는 역사책 베스트셀러 성적표가 그것을 말해준다. 마지막 권을 우리에게 건넨 지금, 그 대단원은 담담하다. ‘최후의 로마인’ 스틸리코 장군의 죽음 이후, 야만족들에게 유린당한 로마는 이미 어제의 위대함을 잃어버린 것. 그러나 저자는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로마제국의 종말로 보면서도 로마문명의 종말까지는 조금 더 여유를 둔다.

7세기 이슬람문명이 지중해로 밀려오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결론은 사뭇 시적이다. “제국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래서 ‘위대한 순간’도 없이, 그렇게 스러져갔다.” 제국주의를 편애하는 저자의 마키아벨리적 시각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이야기’의 매력은 여전하다. 한길사 발행. 1만4,000원

▲ 정자전쟁/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남자가 성관계 중 사정할 때 배출되는 정자의 수는 무려 수억 마리. 이 중 실제로 난자에까지 접근하는 ‘난자잡이’는 1%가 되지 않으며 나머지 99%는 ‘정자잡이’와 ‘방패막이’ 지원부대로 구성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자가 외도했을 경우 자궁 안에서는 두 남자의 정자 수억 마리가 뒤엉켜 독을 뿜는 등 실로 살벌한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

가상의 성생활 상황을 먼저 묘사하고 뒤이어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나간 이 책은 정자전쟁의 이유와 양상을 담은 한 편의 은밀한 탐사보고서이다. 저자는 인간이 성생활을 하는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후손을 많이 남기고자 하는 종존보존 본능’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이를 위해 남자는 여자의 몸속에 더 많은 정자를 투입하며 여자는 최상의 유전자를 공급해줄 정자를 찾으므로 정자전쟁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뱃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일부 성묘사가 아슬아슬하다. 이학사 발행. 1만8,000원.

▲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재주도 없고(旣無才)/ 덕도 없는(又無德)/ 보통 사람에 불과하고(人而已)/ 살아선 벼슬이 없고(生無爵)/ 죽어서는 명예가 없는(死無名)/ 보통 넋에 불과하다(魂而已)/ 시름도 즐거움도 사라지고(憂樂空)/ 헐뜯음도 칭송도 그친 지금(毁譽息)/ 그저 흙덩이에 불과하구나(土而已). 눌재라는 호를 가진 옛 선비가 죽음을 미리 준비하며 쓴 자찬묘지명이다. 생사를 초월한 삶의 여유와 운치가 물씬 느껴진다.

이 책은 호고벽(好古癖)에 흠뻑 빠진 저자가 옛 글을 읽다가 발견한 우리 선비들의 유유자적 생활모습과 사유의 자취를 모아 엮은 것이다. 모두 4부로 나눠 옛 선비들의 일생과 내면, 취미활동, 편지글, 공부하는 법 등을 소개한다.

특히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성호 이익의 절식 철학과 지식에 앞서 학문하는 자세를 강조한 참스승 퇴계 이황의 가르침 등은 고금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푸른역사 발행.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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