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설가의 책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196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우리들의 떨켜’로 등단한 뒤, 1995년 <길 위의 집>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선보였다.

‘한국일보문학상’(1998년), ‘현대문학상’(2002년), ‘이효석문학상’(2002년), ‘이수문학상’(2006년), ‘동인문학상’(2006년) 등을 수상했으며, <길 위의 집>으로 2004년 독일 리베라투르 상(LiBeraturpreia)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길 위의 집>, 단편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 <틈새> 등을 출간했다.

유난히 춥지 않았던 겨울. 겨우내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라느니,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이라느니, 겨울 장사를 망쳤다느니, 그래도 서민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라느니,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한파나 폭설에 대한 기상청의 예보도 번번이 빗나갔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은 더욱더 계절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실 도시에 온전한 계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빌딩숲 사이로 시린 찬바람이 몰아쳐도 인파로 북적거리는 쇼핑센터 안에서는 두터운 외투를 벗어들기 마련이다. 도시에는 계절이 없다. 아니 도시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동시에 존재한다.

지극히 인위적인 모습들로. 하여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접하며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자기가 느낄 추위나 더위를 미리 가늠하고 미리 결정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지적처럼 현대인은 공식적인 기상정보의 도움 없이는 현재의 날씨가 어떤지조차 말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결국 날씨와 계절도 인간에게는 ‘자기본위’인 셈이다.

소설가 이혜경을 만나기로 한 날은 공교롭게도 유난히 춥지 않았던 이번 겨울 유난히 추웠던 어느 날이었다. 약속시간 몇 시간 전, 추위 속 후배의 외출을 걱정하는 ‘자상한 선배님’ 이혜경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역시 자기본위로 말하자면 덕분에 기온이 몇 도쯤 상승한 듯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 여느 신도시들처럼 휘황한 대형 간판들로 뒤덮인 상가건물이 전철역 주변에 밀집해 있었다. 택시를 타고 중심가를 벗어나 한 아파트단지 앞에 도착했다. 길 건너 약속장소인 카페로 향하고 있던 이혜경이 먼저 반갑게 웃어보였다. 가까이 수리산 등산로 입구와 군포시립도서관 신축 공사 현장이 있었다. 공기가 차고 맑았다.

“봄을 벼르고 있어요. 산(山)과 책(冊)이 바로 옆에. 소설가 집으로는 위치가 괜찮은 것 같죠?”

그녀는 올 겨울 이사를 한 참이었다.

원고 마감이 겹쳐 집 정리를 마치지 못한 터라 후배를 집으로 들이지 못하는 점을 내내 미안해했다. 일상이 흡사 병원 응급실처럼 다급하고 심란하게 돌아가게 되는, 지긋지긋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마감’은 작가들에게 말 그대로 ‘데드-라인’인 것이다. 아무튼 카페의 이름은 ‘아름다운 날들’. 커피는 신선하고 향긋했고, 티라미스와 치즈케이크와 고구마케이크가 한 조각씩 모두 공짜였다.

세상 밖으로 달아나던 어느 오후, 시장에서였다. “내 손이 이렇게 커지는 걸 보니, 아가씨가 무척 허기졌나 보우.” 그러면서 떡 장사가 내민 떡은, 치른 값의 두 배는 되는 분량이었다.

그 떡이 간식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임을, 어떻게 알아본 걸까. 사람의 허기를 눈밝게 알아보고 어루만지는 손, 내가 쓰는 글이 그런 것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될까. 그러면서 또 몇 년을 흘려보냈다. (장편소설 <길 위의 집> ‘작가의 말’ 중에서)

이혜경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스물서너 살쯤의 일이었다.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아니 그런 막연한 바람을 갖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몹시도 낯설고 어색하던 그 시절. 위의 구절을 노트에 베껴 적으며 나는 부끄러웠고 또 부러웠다. 사람의 허기를 눈밝게 알아보고 어루만지는 손, 아니 글. 독자나 평자들이 이혜경의 소설을 말할 때면 어김없이 ‘따뜻한’, ‘사려 깊은’, ‘차분한’ 등의 수식어가 사용된다.

이혜경은 크게 외치는 대신 조용히 속삭이며, 진기한 모험의 길을 떠나기보다 낯익은 일상의 세부를 되짚어간다. 정밀한 언어로 삶의 안쪽을 나직이 반추하는 그녀의 눈길은 따뜻하지만 감상적이지 않고, 다감하면서 또한 치밀하며, 충만하되 결코 넘치지 않는다.

이 균형 잡힌 시선 덕분에, 그녀의 소설에서 삶의 허위와 오류에 대한 냉엄한 응시는 대개 공감어린 연민과 배려에 의해 웅숭깊게 감싸인다. (진정석, 문학평론가)

나 역시 몇 해 전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소설에서 받았던 그러한 인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흡사 자상하고 곰살궂은 고모나 이모의 그것이다.

성심껏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량한 국어선생님도 연상된다. 실제로 이혜경은 8남매의 막내로 대학생 조카들을 여럿 둔 인기 만점의 고모 혹은 이모다. 또한 젊은 시절 잠시 전남 여수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적도 있다. 비밀이나 고민을 털어놓아도 좋을 속깊은 친구 같은 이모나 선생님.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정말 그것이 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혜경이 자신의 이미지와 대립되는 어둡고 음험한 무언가를 애써 감춰두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따뜻한 이모나 자상한 선생님이 그녀의 전부라면, 그녀가 소설가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혜경은 선생님이기도 했고, 이모나 고모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소설가다. 예술가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애써, 굳이 선택한 것이다.

몇 해 전 이혜경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의 일원으로 인도네시아에 1년간 체류하며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인도네시아의 풍광이 언뜻언뜻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에 ‘디엥고원’이란 곳이 있어요.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전 힌두교도가 인도네시아를 지배할 때인 5,6세기경 당시 왕조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죠.

디엥이란 힌두어로 ‘신들의 자리’라는 뜻이래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서리가 내리고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하게 추운 곳이에요. 인도네시아 하면 열대 밀림이나 발리 같은 휴양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디엥은 느낌이 아주 달라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또 인상 깊었던 곳이에요. 왠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신들의 자리. 열대 속에 숨겨진 해발 2000미터의 서늘하고 추운 고원. 그러니까 이혜경의 마음 속 어딘가에도 디엥고원 같은 곳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그녀는 이모나 선생님에 그치지 않고 소설을 쓰고,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82년 등단 후 이혜경은 1995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가 결코 무용담처럼 늘어놓지 않는 그 13년의 시간을 열대 속에 숨겨진, 왕조의 유적을 간직한 서늘한 고원과 함께 가늠해본다.

이혜경과 이사와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고향을 떠난 이래 그녀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이사를 다녔다고. 80년대 전세계약 기간이 6개월이던 시절 덕에 서울토박이보다 서울지리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그녀에게 뜨내기처럼 고단했겠다는 말을 건네자, 싱긋 웃으며 “그래서 은근히 좋기도 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사와 여행의 중간쯤. 사실 소설가의 삶이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인터넷 ‘즐겨찾기’에는 여행 사이트들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 여행은 지난 연말의 일본 홋카이도. 그녀는 영국과 프랑스는 가보지 못했지만(않았지만)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는 가 본 여행자다.

집 정리도 그렇지만 이혜경은 요즘 ‘책상’ 때문에 고민이다. 이사를 오며 그녀는 20년 넘게 써왔던 낡은 책상을 버리고, 새로 책상을 맞춤 제작했다. 그런데 새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자니 기침과 두통이 끊이지 않았다고. 체질상 환경호르몬이나 새집증후군에 유난히 예민한 편인데 새로 만들어진 책상에 뭔가 자기 몸과 맞지 않는 성분이 사용된 모양이었다.

하여 그녀의 책상은 지금 수일 째 베란다에서 햇볕과 바람을 쏘이며 유해물질을 토해내는 중이라고 했다. “책상이 자기가 혹사당할 줄 알고 반항을 하는 모양이네.” 누군가의 말에 함께 웃었다. 소설가의 책상은 단순히 책상일 수 없다. 박물관에 가면 괴테나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가 사용했던 책상이 마치 성물(聖物)처럼 전시되어 있다.

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다음에는 꼭 직접 만든 음식 대접할게요”라고 말하며 이혜경은 또 미안한 듯 웃어보였다. 그러나 부드러운 호박죽과 따뜻한 부추전, 갓 지은 밥과 맛깔스러운 반찬은 그녀의 솜씨가 아님에도 그녀가 만든 음식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자상하고 다감하다.

특유의 진지하고 세심한 문장들을 소설 속에 한 땀 한 땀 수놓듯 써내려간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녀의 마음속엔 서늘한 고원이 자리 잡고 있고, 그녀의 즐겨찾기엔 ‘오늘의 유머’도 링크되어 있다.

작별 인사를 나누다 그녀는 깜빡 잊을 뻔 했다며 가방을 열었다. 잔꽃무늬 포장지에 쌓인 작고 납작한 상자를 받아든 후배는 염치가 없는 탓에 어쩔 줄을 몰랐다. “설날 즈음에 양말 선물을 받으면 건강해진대요.”

돌아오는 길, 자기본위대로, 날씨는 유난히 춥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빨리 그녀의 책상이 ‘소설가의 책상’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의 책상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사진 - 이신조 zovenb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