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선의 콩가루 가족, 그들의 심연의 풍경은 '사랑'이더라한 지붕 다섯 가족이 무관심한 삶에서 찾아가는 '가족애'

괴짜 가족도 이 정도면 통제불능 수준이다.

가장부터 말단 막내둥이까지 누구 하나 바람잘 날 없는 이 괴이한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말아톤>으로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한 정윤철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좋지 아니한 가>의 가족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관심사 중 하나는 '가족'이었다.

<가족의 탄생>에서부터 <천하장사 마돈나>, <괴물>, <열혈남아> 등 소재와 장르를 불문하고 가족 혹은 유사 가족 관계를 화제에 올리는 영화들이 줄지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가족제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앞다투어 가족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이유는 뭘까?

대단한 변화는 없었지만, 이들 영화만 본다면 영화가 가족을 달리 보기 시작한 건 확실하다.

<좋지 아니한 가>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늘상 우리 뒤에 붙어다니는 '가족'이라는 제도, 이데올로기, 멍에, 공동체에 대해 색다른 시선으로 접근한다.

심씨 가족 수난사

<좋지 아니한 가>는 <말아톤>을 만든 감독에게 일종의 모험처럼 보인다. 전작의 상업적 성공을 크게 의식하지 않은 듯, 정윤철 감독은 주제나 형식에서 대담한 시도들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널려 있고 에피소드는 파편적으로 이어지며 각 에피소드의 연결도 긴밀하지 못하다. 산만하게 사는 산만한 가족의 이야기를 산만한 드라마 속에 녹여낼 뿐이다. 현실과 판타지가 섞이고, 주변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치고 들어와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한 인물을 중심에 놓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족 구성원을 비롯한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출중하다.

다섯 가족 구성원을 연기한 배우들은 누구 하나 겉돌지 않고 자신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박해일, 정유미, 이기우 등 주변인물들도 잘 섞인다. 특히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 오희경을 연기한 뮤지컬 출신 배우 문희경은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개성 넘치는 신구 배우들을 조화시킨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가족의 이면 들여다보기

가족 구성원의 면면을 뜯어보자면 <좋지 아니한 가>는 콩가루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처음에 이들의 목적은 ‘’ 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밥상머리에 앉아 같이 밥숟갈을 뜨고 한 지붕 아래서 얼굴을 맞대고 잠을 잔다는 것 외에 끈끈하게 그들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는 없어 보인다.

각자 떨어져 존재하는 행성들이 앞면만 마주한 채 공전하는 것처럼, 우리네 가족들 역시 의식주를 함께하는 동물적 가족의 삶, 이상을 나누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다분히 생태적인 공동체로 존재한다.

<좋지 아니한 가>는 이 심드렁한 가족이야기를 통해 원시 사회에서부터 가장 기초적인 생활의 단위로서 당연시 돼 온, 그래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가족'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말하자면,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그 구성원들이 별로 신경쓰지도 않으면서, 일생동안 짐스러워하며 가져가야 하는 대상이자 그 틀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강고한 이데올로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가볍게 무시할 수도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말아톤>에서 자폐아 초원에게 헌신적이었던 엄마가 실은 초원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한국 사회의 가족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서로 살갑게 지내서 친밀도가 높은 가족들이건, 피붙이인지 남인지조차 구별되지 않는 데면데면한 가족이건, 서로 잘 모른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좋지 아니한 가>의 심 씨네 가족은 도가 좀 심할 뿐이다.

정윤철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들 가족이 이상한 듯 보이지만, 실은 다 이렇게 살지 않나?'라고 질문한다. 밖에서는 저마다 고민이 있지만, 집에 들어와서는 별로 내색하지 않고 모여 사는 이상한 공동체. 하지만 서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인간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는다면, 비록 콩가루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적당히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는가라는 옅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무지했던 부모형제들의 사연을 엿보게 된 구성원들은 조금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가족 구성원들의 뒤통수, 평생 볼 수 없는 달의 이면을 보게 된 사람이 깨닫게 된 '자각'과 같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