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장식한 비운의 왕 고종·명성황후, 순종·순명효황후 모신 황제릉

서울에서 망우리고개를 넘어 구리, 남양주를 거쳐 춘천으로 이어지는 46번 국도는 흔히 경춘국도라고 불린다.

이 주변으론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경기도의 구리~동구릉 구간은 조선 태조가 잠든 동구릉을 비롯해 조선의 마지막을 장식한 고종·순종의 홍유릉, 단종 비가 묻힌 사릉, 그리고 광해군묘와 대원군묘 등이 흩어져 있어 특별히 ‘왕릉 길’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전의 일반 왕릉과 능제가 다른 홍유릉

이 중에서도 기울어 가는 조선의 마지막을 지켜봐야만 했던 고종과 순종을 모신 금곡동의 홍유릉(洪裕陵)은 봄날에 산책 삼아 들르기에도 좋은 곳이다. 우선 홍릉(洪陵)에는 26대 고종과 부인인 명성황후 민씨가 잠들어 있고, 유릉(裕陵)에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27대 순종황제와 부인인 순명효황후 민씨,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가 잠들어 있다.

홍릉에 묻혀 있는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은 왕이고,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다. 명성황후는 원래 1897년 청량리 홍릉에 묻혔다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뜨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당시 일제가 “고종은 한일합방 뒤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왕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억지를 부리자 조선 왕실에서 “그렇다면 명성황후의 묘를 이장한 후 합장하자”는 나름대로의 대응 논리를 찾은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홍유릉은 조선의 여느 왕릉과 많이 다른 능제가 눈길을 끈다. 1897년(광무 원년)에 대한제국으로 선포됨에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떠 황제릉(皇帝陵)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게 됨으로 황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석물의 규모나 종류는 물론이거니와 임금의 침실, 제사지내는 방의 위치도 달라졌다.

2개의 무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외곽으로 담장을 설치하였으며, 양릉 중간에 돌로 만든 연못을 두었다. 또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면석에 꽃무늬를 새겼으며, 난간 밖으로 둘레돌과 양석을 세우지 않았다.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에 앞면 5칸·옆면 4칸의 침방이 있는 집인 침전을, 앞 양쪽으로 문·무인석을 세웠으며, 이어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서로 석수(石獸)를 배치했다.

조선 6대 고종황제와 부인인 명성황후가 잠들어 있는 홍릉 / 홍릉을 지키는 석물 / 순종이 잠든 유릉을 지키는 석물 (왼쪽부터)
하지만 비록 황제라 했으나 능역 조성 당시 일제의 간섭이 심했기 때문에 능역의 전체 규모와 분위기는 처음 의도에 크게 따라오지 못했다. 또한 가장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양 등 석물의 모습에서 어떤 이들은 구한말 조선을 침탈하는 열강들의 모습을 중첩시키기도 한다.

홍릉에서 유릉으로 이어지는 산책길 좋아

흔히 홍유릉의 산책 코스는 홍릉을 먼저 들른 다음 유릉으로 옮겨가게 된다. 아마도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순서에 의해서 그렇겠지만, 동선의 흐름도 이게 훨씬 자연스럽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홍릉으로 이어진다. 나무를 분재처럼 가꾼 산책길은 아름답다.

연못을 지나면 왼쪽에 수라간과 재실이 있고, 이어 정면 홍살문 너머 양쪽으로는 석물들이 도열해 있고 그 뒤로 침전이 자리하고 있다. 침전의 규모가 너무 커 능은 잘 보이지 않는다.

홍릉에서 유릉으로 이어진 오솔길은 소나무·가문비나무·전나무 등이 울창하다.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동안 눈에 익은 전형적인 왕릉과 능제가 너무 다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느 왕릉들보다는 고풍스런 맛이 조금 떨어진다. 그래도 봄을 노래하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반갑다.

양지쪽에는 가족 단위로 자리를 펴고 앉아 봄기운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많다. 홍유릉 전체를 산책하는 데 천천히 걸어도 30~40분 정도 걸린다.

만약, 이렇게 홍유릉을 즐기고도 봄길을 좀더 걷고 싶다면 홍유릉 뒷길도 더불어 거닐어보자. 홍유릉 주차장에서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담장을 따라 돌면 나오는 뒷길 산책로는 주변에 텃밭도 있고, 길도 평탄해 아이들도 즐겁게 걸을 수 있다. 봄이 깊어지면 화사한 벚꽃이 산책로를 뒤덮는다.

남양주 시민들은 약간 인위적인 맛이 나는 홍유릉 산책길보다 자연스런 맛이 넘치는 이 길을 더 좋아한다. 한 바퀴 도는 데 40여 분 걸린다.

홍유릉 입장시간은 09:00~17:30(관람시간 18:00)이고,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일. 요금은 대인(19~64세) 1,000원, 소인(7~18세) 500원. 주차비(승용차 기준) 2,000원. 무료로 진행되는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려면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두는 게 좋다. (031) 591-7043

▲ 여행정보

교통 △수도권에서는 도로가 잘 나있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다른 지방에서는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남양주 나들목으로 나와 46번 국도를 타면 된다.

서울→ 6번 국도→ 구리→ 46번 국도(남양주 방면)→ 금곡역 삼거리(우회전)→ 홍유릉. △강변역에서 호평동 방면 9-3번, 차산리 방면 1115-2번 버스가 운행. 잠실역에서 차산리 방면 9202번, 대성리 방면 1115번, 길동에서 구암리 방면 1119번 버스가 홍유릉이 있는 남양주 시내 경유.

숙식 홍유릉 주변에 식당이 많다. 홍유릉에서 승용차로 30~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축령산자연휴양림(031-592-0682)은 숙박과 삼림욕을 곁들일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 민박집이 여럿 있다. 남양주 시청 근처에 있는 어랑 손만두국(031-592-2959)은 남양주에서 맛좋기로 소문난 이북식 손만두 전문 식당이다. 1인분 6,000원. 또 46번 국도 마치터널 못미처 언덕에 있는 천마산 곰탕집(031-591-3657)은 곰탕 국물이 아주 걸쭉하다. 1인분 8,000원.


글·사진/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