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숲에 초록융단이 깔렸네요

봄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이야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올해는 유난하다.

한동안 지나치게 매서운 꽃샘추위에 남쪽에서 벌어진 백목련 꽃잎이 고개를 떨구고, 숲 가 나목마다 생명력으로 물오르던 초록빛 기운이 화들짝 놀라 얼어붙는 듯하더니, 이내 한나절의 따사로운 봄 햇살의 간지러움에 숲의 분위기는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 삐죽삐죽 올라오기 시작한 초록 잎새들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생각만으로도 마음은 금세 새 희망으로 충만해진다.

숲에서 가장 많은 식물은 무엇일까? 흔히 군락을 이루는 키 큰 나무를 생각하며 소나무숲이며 참나무숲 등을 말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땅 위의 키 작은 풀을 가지고 숲을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숲을 입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지면을 덮은 풀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숲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많이 땅 위를 덮고 있는 풀들은 무엇일까? 멀리 가지 않아도 서울 도심의 남산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산거울’이니 ‘김의털’이니 꽃잎이 따로 없어 일반인이 구별하기 힘든 벼과나 사초과 식물들을 제외하고는 단연 애기나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제비꽃 종류처럼 한두 포기 혹은 몇 포기씩 자라는 것이 아니라 군락을 이루어 지면을 덮어가며 자라니 눈으로 본 것보다 훨씬 많다.

그렇게 흔한 데도 많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워낙 키가 작은 풀이라 눈여겨 보지 않은 탓도 있거니와, 잎새 모양을 보면 ‘둥글레’이려니 하고 지나치기가 쉽고 꽃은 원색적이지 않아 눈에 금세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천으로 자라므로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탓이 크다.

하지만 애기나리는 볼수록 새록새록 고운 식물이다. 봄에 새로 나와 바로 한 뼘쯤 자라는데, 그나마 서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워 자란다. 마디마다 자라는 나란히맥의 잎새는 부드러워 느낌도 좋다. 봄에 피는 흰 꽃은 줄기의 끝에서 자란다. 잎이 달리는 마디마다 꽃이 달리는 둥글레와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애기나리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곧바로 알 수 있다. 나리꽃처럼 6장의 꽃잎을 가진 아주 예쁜 모습이지만 여지고 작기 때문이다.

물론 백합과에 속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더러 키가 무릎 높이까지 크게 자라고 줄기가 갈라지는 것도 보이는데 이는 ‘큰애기나리’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깊은 숲속에는 꽃은 작지만 빨강머리 앤처첨 갈색 점들이 빼곡히 박혀 있는 식물도 있다. 이는 ‘금강애기나리’로 불린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약으로 쓰는데 몸이 허약해서 생기는 기침이나 가래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요즈음엔 생태숲이나 공원을 만드는 지피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 작은 분에 담아 키우는 분경 소재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금빛 화살로 쏟아지는 봄기운이 숲까지 다다르거들랑, 눈을 낮춰 곱고도 강인한 애기나리를 만나 말을 걸어보자.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푸른 새 잎새를 틔우는 네 모습이 너무도 눈부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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