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물든 계곡, 봄의 아우성이네

오락가락하는 봄날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집 앞에는 산수유가 가장 먼저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지리산의 자락과 자락이 이어지는 끝의 마을 빈터와 뒷산, 밭 주변 등에 온통 산수유가 만발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내면의 봄 풍경도 황홀하지만, 꽃사태를 완상하려는 마음의 욕심을 거두어 집 앞 산수유를 바라보면 작은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피우며 그려내는 노란 물결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은은함을 풍긴다.

생동감 넘치는 봄을 상징하는 풍광으로 먼저 산수유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기실 산수유는 어느 때라도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순간순간 우리들에게 아름답게 다가온다.

노랗게 터뜨리는 봄의 꽃망울은 물론이려니와 사랑스러운 잎새는 여름 내내 보기 좋다. 가을에 맺는 열매의 모양도 특이하며 그 귀한 쓰임새을 생각하면 산수유의 계절은 아무래도 가을인 듯싶게 한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열매를 눈여겨 바라보면 열매의 옆이나 가지 끝에는 작은 눈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겨울이 한참인 때조차도 마당에 나가면 쉽게 눈에 띌 만큼의 크기를 가진 이 눈 속에는 이듬해 봄에 피어날 수십 개의 꽃들이 포개어져 자리잡고 있다. 결실의 순간에 이미 또 다른 세대가 잉태되어 있는 것이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소교목이다. 한때 이 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졌다.

그래서 우리나라 각지에서 자라는 산수유들은 모두 중국산이려니 했는데 1920년대 경기도 광릉에서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가 아주 큰 2, 3그루의 산수유 거목을 발견하고, 이 후 우리나라 학자들이 산수유의 자생지가 한국임을 확인함으로써 이제는 당당히 토종 나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 지역의 나무들은 대부분 약재로 쓰거나 또는 꽃을 보기 위하여 심은 것들이다. 300여 년 전에 발간된 실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책을 보면 ‘산수유는 2월이 꽃이 피는데 붉은 열매도 보고 즐길 만하며 땅이 얼기 전이나 녹은 후 아무 때라도 심으면 된다’라고 서술된 것을 미루어 이미 그 이전부터 심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당시에 심은 나무들은 아무래도 중국에서 들여와 심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는 1722년 우리나라의 어락원을 통해 전파되어 지금 사방에 퍼져 있다고 한다.

산수유나무의 갈색 껍질은 얇은 조각으로 벗겨지는데, 그러고 나면 다시 새 껍질이 생기기를 반복하여 독특하고 운치 있는 무늬를 만든다. 열심히 꽃과 잎과 열매를 만들면서도 나무껍질마저 새롭게 거듭나기를 쉬지 않는 산수유의 부지런함에 저절로 경외로움이 느껴진다.

가는 가지에는 봄이면 꽃송이들이 둥글게 모여 달린다. 많은 봄꽃들이 그러하듯 산수유도 잎보다 먼저 온통 꽃만을 피워낸다. 우리가 그저 꽃이라고 느끼는 탁구공보다도 작은 둥근 꽃송이들은 실제로는 수십 송이의 작은 꽃들이 모여 있는 꽃차례이다.

꽃이 지면서 돋기 시작하는 잎도 아주 보기 좋다. 가지에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적당한 크기의 타원형 잎에는 반질반질한 윤기가 흐르고 잎맥이 양쪽으로 줄지어 나면서 잎가장자리까지 위를 향하여 둥글고 길게 이어지는 것이 아주 특색 있다.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이면 이른 봄꽃의 청초함은 간 곳이 없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산수유에는 석조, 촉산조, 계족, 서시, 육조 등 여러 한자 이름이 있는데 여기서 주로 등장하는 조라는 글자는 대추나무 조(棗)자를 쓴다. 아마도 그 길쭉한 열매가 대추를 닮았기 때문인 듯하다. 붉은 열매는 대추보다는 작고 훨씬 날씬하지만 대개 둥그런 규칙을 깨고 길쭉하다.

꽃에서 시작한 산수유와의 청초한 첫만남이 잎에서, 열매로, 또 그 열매를 담은 그윽한 빛의 술이나 약으로 계속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