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크, 재미난 것 놓칠 뻔 했네"

영화 ‘강력 3반’의 패러디 한 장면. 형사 김민준 역할의 배우가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용의자를 취조하고 있다. 진술서를 위해 인적사항을 묻지만 도무지 용의자의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혀 짧은 소리 때문이다. 지친 김민준이 ‘저기 가서 무릎 꿇고 있어!’라고 버럭 화를 내지만 용의자는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용의자 역시 김민준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 김민준이 한숨을 내쉬며 결국 소리친다. ‘무듭 꾸더! 무듭 꾸드다고!’ 용의자가 비호같이 알아듣고 바로 무릎을 꿇는다.

대학로 연극가에서 펼쳐지고 있는 패러디극 <웁스>의 제1막 중 한 대목이다. 패러디는 이미 정치권을 풍자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이용돼, 자기 의사 표현의 일부가 된 장르. 영화 <쉬리>를 패러디해 원작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재밌는 영화>나, 외국의 호러물 <스크림>시리즈를 패러디한 <무서운 영화> 등도 패러디의 묘미를 활용한 작품들이다.

극단 버스팅 엔터테인먼트에 의해 선보이고 있는 <웁스> 또한 최근 국내 영화계를 강타했던 화제작 여러 편을 패러디했다. 영화 <타짜>, <괴물>, <강력3반> 등을 각각 짤막하게 재구성한 제1막에 이어, 제2막에서는 영화 <친구>를 소재로 본격적으로 풍자를 펼친다.

영화 <친구>는 성장 배경과 지향점이 다른 4명의 친구를 통해 세상의 그늘을 그려낸 작품.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 화목한 가정에서 티없이 자란 우등생 상택과 까불이 감초 중호를 중심으로 폭력조직 세계의 비정함과 우정을 절묘하게 교차시켰다. 그 <친구>를 무대 위에서 비틀어 재현한다.

방송사 공채 출신 개그맨 남상호, 손윤상을 비롯해 박윤창, 이희경 등 젊은 희극배우들이 출연한다. 무대 자체로는 이만한 저예산 공연이 없을 것 같다.

손바닥만한 무대에 거의 단체 유니폼에 가까운 평상복 마련이 외형적인 투자의 전부다. 이들이 승부하는 것은 오로지 내용 자체에 있다. 재미있는 비틀기와 애드립, 연기력이 최대 무기다. 그리고 그 승부는 거의 성공한 것 같다. 무대는 ‘가난’하지만, 약 40분간 이어지는 이 2막의 패러디극 ‘친구’는 거의 매 장면마다 빠짐없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다.

특히 원작의 전개부에서 옮겨 온 ‘영화관람비 내기 달리기’ 장면의 패러디는 매우 기발하다. 간단한 사이키 조명 장치와 배우들의 슬로 모션만으로도 그만한 박진감과 재미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기발한 착상은 그 외에도 결투 장면 등 몇 번 더 나오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객석의 탄성과 웃음을 자아낸다.

<웁스>에서는 공연 전 안내자 겸 극중 배우로 나오는 손윤상과 남상호의 안정된 연기와 애드립이 특히 돋보인다. 객석을 주도한다는 당당한 자신감이 연기 속에 묻어있다. 반대로, 기본기의 부족에다 사투리 대사까지 겹쳐 이중고를 치렀을 신인 배우들의 어딘가 모를 어색한 연기는 아쉽다.

2막에 비해 1막의 옴니버스식 단막 패러디는 진부하다. 구색만 갖추었을 뿐, 일반인들의 유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관객들의 반응을 미루어 평가한다면, 2막이 1막보다 3배 이상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공연은 대학로 키득키득 아트홀에서 3개월마다 패러디 내용을 바꾸어가며 이어진다. 폐막일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오픈 런이다.


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