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도루 지음·한명희 옮김 / 수희재 발행·12,000원

중국의 병원 앞에는 수의(壽衣)가게와 장의사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라면 보기만 해도 꺼림칙하다고 여길 법한데 중국인들은 “그게 뭐 어때?”라는 반응이란다.

죽음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운행의 일부라고 달관하는 이런 기질은 저자의 가름대로라면 현실주의적인 패(貝)의 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패는 무엇이고 그와 한 짝을 이루는 양(羊)의 문화는 무엇일까.

저자는 중국문학을 전공한 일본인 학자다. 그는 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중국인의 기질을 두 개의 키워드로 직조해낸다. 상인의 어원이 될 만큼 유형의 물질을 추구했던 은나라와 무형의 선(善) 및 예(禮)를 따지는 주나라를 조상으로 둔 중국인. 여기서 주나라의 문화를 양(羊)이라 함은 유목 민족이었던 탓에 유일신을 믿고 하늘에 양을 제물로 바친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 기질은 주나라의 예법인 유학을 창시한 공자가 은나라 사람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혼합된다. 그리고 현대에 와선 화교가 가진 상재(商才)와 상도(商道)의 조화, 시장경제의 실리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결합 등에서 어렵지 않게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책의 목적이 단지 중국인의 이중적 기질, 본심으로서의 패와 명분으로서의 양을 드러내는 데만 있지는 않은 듯하다. 저자가 짧은 글들로 엮어가는 중국인의 모습이 간단치 않고 그 지식의 넘나듦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랑의 노하우, 인구론, 히어로와 사회계급 등 여러 갈래에서 들여다본 중국인은 매우 흥미롭다.

‘머무르다’와 ‘살다’를 구분하지 않을 만큼 중국인들은 유랑의 지혜가 집적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혹 아시는지. 현대의 화교를 떠올리면 쉽지만 이보다 앞서 19세기 태평천국(1851-1864)운동의 잔당들이 있었다. 이들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할 때, 건장한 백인과 흑인들은 전염병으로 픽픽 쓰러졌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멀쩡했다. 이유인즉 생수와 날것을 입에 대지 않았던 오랜 생활습관 덕이었다. 게다가 치밀한 네트워크로 결속을 다져 낙엽생근(落葉生根: 나뭇잎이 떨어진 곳에 뿌리를 내린다)의 정신을 퍼뜨린 게 중국인이 세계 어디를 가든 무리를 지어 정착할 수 있었던 성공요인.

중국의 인구는 2005년 기준으로 13억 명을 웃돈다. 인류의 5명 중 1명꼴이다. 중국에게 인구는 힘의 원천이기에 앞서 거대한 벽이었다. 각 왕조는 인구가 6,000만 명을 넘어설 때마다 명운을 다했다.

폭동과 전란으로 인구가 격감하지 않으면 나라 꼴을 갖출 수 없었던 것이다. 식량혁명이 일어난 청나라 이전까지 말이다. 또 기근과 전쟁 등 인재를 막기 위해 사회를 통제하는 정치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서양과 달리 유교와 도가사상의 성인이 이상적인 정치가를 의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구가 많은 만큼 어지간한 역량이 아니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도 어려웠을 터. 중국인들이 난세의 영웅들에 열광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천하의 사람들에게 밥을 먹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오랑캐의 핏줄이라도 황제로 받아들인 그들의 관대함은 현실주의의 소산일 것이다.

그러나 역성혁명이 자주 일어나고 민중의 사랑을 받는 영웅을 무수히 가졌어도 서양이 경험한 온전한 사회변혁은 너무 늦었다. 왜일까. 답은 중국사의 흑막, 사대부에 있다. 3,000년에 걸쳐 표면에 뜬 낙엽, 황실의 성(姓)만 교체됐을 뿐 연못 속의 물인 사대부는 굳건히 살아 남았다. 유교의 힘, 양의 문화가 버팀목이었음은 짐작 가능하다.

저자는 외국을 알려면 그 나라 사람에게는 자명한, 공기와 같은 미묘한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줄줄이 읊는다고 중국을 아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서로의 사정을 이해해야 진정한 교류가 가능해짐은 물론이다. 책은 일본과의 비교가 주류지만 한국까지 ‘3자 대면’ 해서 읽어도 재미날 듯하다. 사족임을 알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가 각각의 글 속에 꼼꼼히 담은 ‘패양의 뱀다리’는 교양수첩으로도 손색이 없다.


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