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피리 불며 추억을 만들어요5월 중순까지 초록세상, 부드러운 구릉 뒤덮은 보리밭에 탄성 절로

봄이 점점 깊어간다. 산기슭의 매화는 어느새 피었다가 스러졌고, 진달래는 연분홍 꽃망울을 여기저기서 터뜨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황량하던 숲은 기적처럼 연둣빛으로 물들어간다.

이 무렵이 되면 전북 고창도 봄의 한가운데 들어서게 된다. 이토록 아름답고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에 널따란 초록 들판을 발이 시리도록 걷고 싶다면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으로 떠나보자.

30여만 평에 이르는 청보리밭 장관

“보리피리 불며 / 봄언덕 고향 그리워 / 피-ㄹ 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 피-ㄹ 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 피-ㄹ 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화 / 눈물의 언덕을 지나 / 피-ㄹ 닐니리”

한하운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를 읊다 보면 옛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그렇다. 올 봄에는 청보리밭을 거닐며 보리피리도 불어보자.

보리는 보통 11월 초에 파종하는데, 11월 말쯤이면 잔디 크기로 자라난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성장을 멈추고 눈 속에서 새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어 겨울을 이겨낸 보리는 3월 초부터 쑥쑥 자라나고, 4월 초 무렵이면 이삭이 나오기 시작해 5월 중순까지 푸른빛을 띤다. 이어 5월 중순부터 누렇게 변하며 점차 익기 시작하고 6월 초에 수확을 하게 된다. 짧지 않은 보리의 일생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보리’는 어떤 종자가 아니라 이삭이 나오기 시작해서 누렇게 익기 전까지의 푸른색 보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 보리밭은 적지 않지만 고창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 청보리밭의 아름다움이 으뜸이다. 여인의 곡선을 닮은 호남 땅 특유의 부드러운 구릉을 뒤덮은 청보리밭을 보는 순간 누구나 저절로 감탄사를 터뜨리게 마련이다. 면적은 무려 30여 만 평이나 된다.

학원농장은 봄엔 보리밭과 가을엔 메밀밭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개인 농원. 농장을 이처럼 가꾼 주인공은 대그룹 이사까지 지냈던 진영호 씨다. 그는 어릴 적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귀거래사’를 부르고 1992년 낙향한 뒤 잡목만 무성했던 야산이나 불모지를 개간해 지금의 농장을 일구었다.

학원농장이 관광농장을 인가받고 정식으로 운영을 시작한 94년 이전에도 이곳에 보리는 많이 재배됐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보리는 단순한 농작물이었을 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 사진작가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관광객들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첫 청보리축제가 열리던 2004년엔 한 달 동안 무려 20여 만 명이 다녀가기도 했다.

청보리밭 사잇길 걷기 등 다양한 체험 가능

학원농장 청보리밭을 찾은 관광객들이 보리밭 사잇길을 걷고 있다. / 노인들이 짚으로 공예품을 짜고 있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하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는 14일(토)부터 5월 13일(일)까지 30일간 초록 물결 가득한 청보리밭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첫날 정오 무렵 고창농악한마당 공연으로 시작하는데, 축제 기간에는 보리밭 사잇길 걷기 체험과 보리음식 먹기 체험 등이 주말마다 열린다.

농악놀이와 창작무용 등도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게지기, 항아리투호놀이, 윷놀이, 굴렁쇠 등의 전통놀이도 즐길 수 있다. 또 21일과 28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특설무대에서 판소리한마당 공연이 펼쳐진다. 이 행사에는 내로라 하는 명창과 고수가 출연해 흥을 돋운다.

축제기간 중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보리밭이 매우 번잡하니 가능하면 주중에 찾고, 어쩔 수 없이 주말에 찾을 거라면 오전 10시 이전에 찾아야 좋다는 게 농장 관계자의 귀띔이다. 축제가 시작되는 14일쯤 청보리의 키는 30~40cm 정도 된다.

학원농장의 보리밥식당에서 맛보는 보리밥이 별미다. 청보리밭에서 직접 재배한 보리를 쓴다. 인근 텃밭이나 산자락에서 난 고사리·상추 등의 나물을 넣어 쓱쓱 비벼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별미다. 이 밭에서 가을 농사를 져 수확한 메밀로 맛을 낸 메밀국수와 메밀묵도 별미다. 보리밥 5,000원, 메밀국수 4,000원, 메밀묵 7,000원.

청보리밭 입장료와 주차료는 없다. 자세한 사항은 고창군 홈페이지(www.gochang.go.kr)나 학원농장 홈페이지(www.borinara.co.kr)를 참조하거나 전화(063-564-9897)로 문의. (사진 제공=고창 군청)

여행정보

숙식 학원농장 주변에는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다. 학원농장에서 승용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구시포해수욕장에 하늘민박(063-561-3324), 바다민박(063-561-3323)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대부분 콘도식 민박이라 직접 취사를 할 수 있다. 작은 방 3만~4만 원. 횟집이 여럿 있다.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나들목→ 23번 국도(대산·고창 방면)→ 대산면 소재지→ 796번 지방도→ 학원 농장 / 고창 나들목→ 3km→ 고창읍→ 23번 국도(영광 방면)→ 15km→ 대산면 사거리(우회전)→ 796번 지방도→ 8km→ 학원농장. 이정표가 아주 잘 되어 있다. 수도권에서 3시간30분 소요.

▲서울→ 고창=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40~50분 간격으로 16회(07:00~19:00) 운행. 3시간20분 소요. 요금 1만2,600원. 전주공용버스터미널(24회), 광주종합터미널(8회)에서도 운행.

▲고창→ 청보리밭= 시외버스정류장(063-563-3366, 3388)에서 매일 수시(06:20~21:40) 운행하는 무장행 버스 이용. 무장에서 매일 13회(06:45~20:10) 운행하는 공음 방면 군내버스 이용하여 선산에서 하차. 축제장까지 도보 10분 소요. 무장에서 택시 7,000원.




글 민병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