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가 예술이면, 원숭이도 화가다!

위 그림 중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하나 선택해보자. 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나마 나은 작품을 하나 선택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잠시 그림의 어떤 점이 자신의 마음을 끌었는지 생각해보자. 어차피 모두가 추상화이므로 각 작품들이 무엇을 재현(再現)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다른 작품보다 특정 작품에 마음이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처럼 어떤 작품을 놓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시도하거나, 작품으로 인해 촉발되는 심리적 변화를 느끼는 과정을 우리는 보통 ‘감상(행위)’이라고 부른다.

사람들마다 미적 취향은 다양할 수 있으므로, 위 작품들 중에서 어떤 작품이 더 훌륭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위 작품들 중에 동물이 그린 작품이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위 작품들 중에서 둘은 동물의 작품(?)이다. 과연 어떤 작품이 동물의 것인지, 또 어떤 동물이 그린 작품인지도 한번 맞춰보시라. 많은 학생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예술이라면 무조건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 믿어 왔던 평소의 생각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동물의 낙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작품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철회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 작품을 만들었든 간에 미적 체험을 촉발시킨다면 그 작품이 수용자에게 좋은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은 음악의 문외한이라도, 몇 번의 클릭만으로 그럴듯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이제 음악가(어쩌면 사용자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가 리듬, 화성, 빠르기 등의 몇 가지 변수들만 선택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음악을 만들어 준다.

사용자가 기본적인 규칙만 지켰다면 컴퓨터가 만들어낸 음악도 꽤 들어줄 만하다. 최근에는 가사를 입력하면 노래를 불러주는 프로그램도 상용화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만든 음악을 자신의 친구에게 들려준다면, 아마도 그의 친구는 눈이 휘둥그래질 것이다. “아니 네가?”

위 이미지는 2006년에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조작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웹상에서 피카소가 자주 사용했던 형식과 양식을 조합하여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다.

나는 20여 분 동안, 이런저런 이미지들을 짜맞추고, 그림 파일로 저장하여 그럴싸한 제목을 붙였을 뿐이다. 만약, 이러한 정황 설명 없었다면, 많은 독자들은 위 이미지를 보고, “시몽이란 놈이 평범한 논술 강사는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동물이 그린 그림이나 컴퓨터가 만들어 낸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예술이 인간 고유의 활동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물론, 동물이 그린 그림은 의도가 없는, 단순한 우연의 결과라고 비판할 수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은 단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므로, 조금 발전한 새로운 표현 도구일 뿐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작가들이 ‘우연적(우발적) 창조’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작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결정할 수 없는 경우에, 그냥 ‘무제’라고 제목을 붙여 버리기도 한다. 또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단순한 악기나 물감처럼 작가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뿐만 아니라, 재료를 배치하는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는 점에서 ‘표현 도구’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보자. 몇 년 후, ‘Artist No.1’이라는 예술 기계가 등장한다. 이 기계는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 없이도 스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먼저, 예술 기계는 1,000만 화소가 넘는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를 장착한 눈으로 대상을 관찰한다.

예술 기계 안에는 이미 예술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작품들에 대한 분석 자료가 내장되어 있으므로, 예술 기계는 자신이 관찰하고 있는 대상들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한강변을 관찰하던 예술 기계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풍으로 그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20개의 붓이 장착된 로봇 팔을 움직여 스케치를 시작한다.

또한, 이 녀석은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스스로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예술 기계를 단순한 표현 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 행위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준다. 여전히 동물이나 기계의 창조 행위를 ‘유사-예술 행위’로 폄하해 버릴 수도 있지만, ‘무엇이 진짜 예술이냐’는 질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유효성에 종지부를 찍어줄, 새로운 예술 장르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 게임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컴퓨터 게임을 예술로 보지 않을 타당한 이유를 찾기가 더 힘들다. 오히려 가장 진보한 형태의 예술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장르가 바로 컴퓨터 게임이다. 컴퓨터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영화와의 비교 속에서 드러난다.

영화와 컴퓨터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작품에 대한 ‘수용자의 개입 여부’이다. 지금까지의 예술 작품이 완결된 형태로 수용자에게 제공되었다면, 새로운 예술은 수용자가 작품을 완성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롤 플레잉(role-playing) 게임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롤 플레잉 게임은 특정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일정한 게임의 규칙이 있지만 게임의 결과는 게이머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서 달라진다.

여기에 네트워크라는 특성이 가미되면, 게이머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다. 또한 그래픽 기술과 컴퓨터의 성능 향상은 조만간 실사에 근접하는 3차원 영상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독자라면,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2001)〉나 〈애플 시드(Apple Seed)(2004)〉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감상해 보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골룸’을 떠올려 보시라. 여유가 있다면, 〈발더스 게이트(Balder's Gate)〉나 〈네버 윈터 나이츠 (Never Winter Knights)〉 같은 게임도 한번 시도해 보길 권한다.

작가(감독)가 이미지와 스토리를 제한하고, 2시간 정도의 시간제약 속에서 완결된 형식과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은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특성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의 한계이자 극복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은 이러한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관객(이용자)은 수백, 수천 시간에 걸친 우발적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전능한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블랙 앤 화이트), 반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심즈). 게임은 몇 달, 몇 년간 계속되면서 나의 스토리와 그(녀)의 스토리가 접속되고 우리는 서로 주인공이자 조연으로 기능하면서 게임을 즐길 것이다.

혹자는 컴퓨터 게임은 그냥 흥미위주의 오락거리일 뿐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영화 역시 등장 초기에는 지금의 컴퓨터 게임과 마찬가지로 저급한 오락으로 여겨졌고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기의 영화 감독들조차 예술작품을 목표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아직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컴퓨터 게임 역시 영화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허황된 것은 아니다. 컴퓨터 게임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의 예술관이 고리타분한 것은 아닌지 한 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처음에 제시한 추상화들 중에서 위쪽의 두 작품이 원숭이가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들은 1958년 영국 런던 앵포르멜 전시회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심원 TOPIA 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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