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세키 요리는 우리나라의 한정식, 프랑스의 오뜨 퀴진에 해당하는 일본의 고품격 정찬요리다.

한꺼번에 모든 요리가 나오는 우리나라 한정식과 달리 가이세키 요리는 서양의 코스요리처럼 작은 그릇에 담긴 요리가 한 가지씩 순서대로 나온다.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재료와 장식에 있어서 계절감을 최대한 살린 게 이 요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예를 들어, 가이세키 요리 코스 중에 봄의 맛과 바다의 맛을 표현한 것도 있다. 일본요리 중에서도 '눈과 입이 즐거운 요리'의 대표격이라 하겠다

가이세키라는 이름은 선승이 단식의 좌선수양을 할 때 공복감을 막기 위해 돌(세키)을 뜨겁게 달궈 기모노소매(가이)에 넣은 데서 유래했다. 그것이 후에 장시간의 다도(茶道) 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 가벼운 식사로 변했다.

다도는 에도 시대 일본의 지배층이었던 사무라이 계층에 널리 퍼졌던 것으로, 가이세키는 자연스럽게 지배층에서 먹는 요리가 됐다. 그리고 가이세키에 해당하는 한자도 회석(會席)으로 바뀌면서 점차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연회요리로 변천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정식 요리인 가이세키 요리는 점점 스페인과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셰프들의 관심을 끌며 그들 요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가이세키 요리에 담긴 컨셉과 복잡한 양식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해외로 이 요리를 전파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이 요리가 왜 차게 서빙돼야 하는지, 왜 그렇게 양이 적은지 가이세키의 컨셉은 외국인은 물론 일본인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한 세프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 최근 외국인들도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가이세키 요리법을 책으로 발간했다. 교토에서 일식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요시히로 무라타라는 유명한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무라타는 자신을 전통에 뿌리를 둔 혁신적인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가이세키에 담긴 일본 전통은 계승하되, 이를 시대적 변화에 맞게 진화시키겠다는 포부다. 그의 책을 보면 가이세키에 후구사시(복어회)나 아와비, 우니, 고노와타 등 일본의 진귀한 식자재를 주로 사용하면서도 그는 때로 식자재와 조리법에 있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어떤 코스에는 거위간인 푸아그라를 사용하기도 하고, 오리가슴살구이를 겨자소스를 뿌려 샴페인과 함께 내기도 한다. 구이요리를 뜨겁게 해서 서빙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일본정부가 해외에 있는 일본 레스토랑에 대해 일본 전통성에 대한 정부인증서를 발급하고, 랭킹을 매기겠다고 발표한 것과 전통적인 일본요리를 시대를 고려해 변화시키려는 무라타의 진보적인 행보가 대비되기도 한다. 음식이 보다 대중적으로, 문화적 경계를 넘어 전파되기 위해서는 전통성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식 자체가 진화의 과정이다"고 말한 무라타는 음식도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교훈을 준다. 좀 더 싼 가격으로 가이세키 요리를 맛보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전세화 뚜르드몽드 기자 ericwint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