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 된 관객의 취조는 시작되고…

자, 게임을 시작하자. 배경은 이화동의 어느 평범한 미용실. 평소처럼 수다쟁이 남자 미용사 이상돈과 여자 미용사 써니가 손님들을 상대로 일하고 있다.

이상돈의 애인인 써니의 또 다른 애인이자 골동품 판매상인 오준수, 사치와 과시를 낙으로 사는 상류층 귀부인 황영련, 그외 두 명의 형사가 손님으로 앉아 있다. 제각각의 이유로 황영련만을 남겨둔 채 우연히 모두가 미용실을 벗어난 시각, 갑자기 미용실 위에 사는 건물주인이자 왕년의 유명 피아니스트 송채니의 피살사건이 벌어진다.

손님으로 가장하고 있던 형사 나도식 반장과 조동욱 형사는 미용실 현장에 있었던 이들을 하나씩 심문하며 살인범을 찾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이 줄거리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누가 범인인가의 진위도 확실치 않다.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2관에서 상연되고 있는 폭소추리극 <쉬어 매드니스>는 공연 후 30분이 경과할 무렵부터 매우 흥미진진한 실험에 돌입한다.

기존의 일방통행식 공연이 아닌, 관객들의 두뇌플레이를 요하는 범죄수사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급선회한다. 이러한 형식의 접근과 풀이법은 국내 무대에서 처음 선보이는 듯하다. 신선하면서도 대단히 도전적이다.

물론, 두 형사의 초동수사 과정을 통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의 기본 정보를 관객들에게 미리 제공해준다.

그 후 갑자기 취조권을 객석으로 넘긴다. 형식적인 맛보기가 아니라 전적으로 관객들의 동참 없이는 극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을 만큼 심문의 전권을 ‘확실하게’ 양도한다. 더 이상 관객은 관객이 아니라 또 다른 배역의 탐정단이다.

무대를 향한 관객들의 즉석 취조가 벌어진다. 각자 혐의가 가는 용의자를 지목해 살인사건 전후의 수상한 행적과 거짓진술을 추궁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순전히 용의자 자신이나 형사들의 애드립에 의존한다. 관객들의 취조는 갈수록 예리하고 복잡해진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나도식 반장이 좌중을 정리한 뒤, 범인 색출에 들어간다.

유력 용의자에 대한 관객들의 거수 투표가 진행되고, 투표 결과에 따라 잠시 후 극이 재개되면서 조금 전 관객들로부터 용의자 1순위로 지목된 인물이 결국 살해 동기를 실토하며 체포되는 것으로 이 게임은 끝난다. 관객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매회마다 결말이 달라지는 기발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이 추리극은 폴 포트너의 원작을 박준용 번역, 강봉훈 연출로 만들어 내놓은 작품이다. 원작부터가 미국 역사상 최장 공연 기록을 낳았던 화제작으로, 전 세계 730만 관객을 끌어모았을 만큼 큰 반향을 부른 바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배우 김도형, 김기수, 김대종, 박호영, 홍우진, 이지수 등이 출연, 호연한다.

폭소추리극이라는 타이틀과는 달리 코믹의 요소가 그다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결말의 대담한 개방과 실험정신만으로도 <쉬어 매드니스>의 가치는 이미 충분히 입증된 듯하다.

갑자기 환하게 불을 밝힌 채 객석에서 벌어진 관객들의 심문은 작품에 대한 재미와 집중력을 자연스레 강화시키는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상당수의 관객들이 써니를 범인으로 지목해 써니의 자백과 함께 극이 마무리됐지만, 다른 용의자가 지목될 경우 출연진이 준비한 제2, 제3의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쉬어 매드니스>는 폐막일이 지정되지 않은 오픈런 공연이다.


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