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레이머 감독 세 명의 악당과 벌이는 정의의 게임… 보는 재미 업그레이드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블록버스터 전쟁의 서막을 장식할 영화 <스파이더맨3>의 꼴은 예상대로다.

엄청난 물량 공세와 강화된 스펙터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첨단 특수효과로 보는 이들의 얼을 빼놓는다. 스파이더맨의 주무기인 거침없는 마천루 활강은 그의 숙적이자 친구인 고블린 주니어로 인해 더 화려해졌다.

그러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볼거리에만 정신이 팔린 영화는 아니다. <스파이더맨3>는 오히려 세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방대한 이야기를 깔아놓고 있다.

스파이더맨이 대적해야 할 적은 무려 세 명(외계생명체 심비오트로 인해 포악해지는 스파이더맨의 또 하나의 인격 블랙슈트 스파이더맨까지 합하면 네 명!)으로 늘어났고, 그와 로맨스를 즐기는 여성도 두 명이다.

이 복잡한 관계망을 블록버스터에서 충실히 묘사하기란 사실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샘 레이미의 연출력과 1편부터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충실히 지켜온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의 존재감은 모든 걸 기우로 돌린다. 문제는 자칫 늘어지기 쉬운 이야기를 그들의 매력과 경천동지할 볼거리로 매조지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스파이더맨

전편에서 짝사랑하던 여인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녀와 사귀게 된 파커(토비 맥과이어), 즉 스파이더맨의 현재는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2편에서는 스파이더맨으로 활약하기 위해 사생활이 엉망이 된 파커였지만, 3편에서 그는 어느덧 두 개의 삶을 효과적으로 영위할 만큼 특별한 삶에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활약하는 주무대인 뉴욕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시내의 전광판에선 시종일관 스파이더맨 주제가가 울려 퍼지고 파커는 의기양양하게 뉴욕을 누빈다.

하지만 행복감도 잠시, 자신의 아버지를 스파이더맨이 살해했다고 믿는 해리 오스본은 아버지의 장비와 능력을 물려받아 고블린 주니어로 탈바꿈해 스파이더맨을 공격한다.

행복한 파커와 달리 배우로서의 꿈이 좌절된 메리 제인은 공사다망한 스파이더맨 대신 의지할 곳을 찾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시장의 딸 그웬과 스파이더맨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한편 중병에 걸린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탈옥한 죄수 프랑코는 사고로 실험에 휘말려 온몸이 모래로 된 괴물 샌드맨으로 변한다. 숙부를 살해한 원수가 샌드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파커가 복수심에 불타면서 불행은 스파이더맨을 덮친다.

1편과 2편의 커다란 성공으로 인해 사이즈가 업그레이드된 3편의 연출을 맡게 된 샘 레이미는 그 자신이 스파이더맨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스파이더맨> 시리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악과 여인들을 모두 등장시킨다.

하지만 결과는 여러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샘 레이미의 야망에 부합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적을 여러 명 등장시키면 망한다는 영웅 블록버스터의 오래된 불문율을 과감히 깨고 무려 세 명의 악당을 동시에 등장시킨 샘 레이미의 야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세 명의 악당 캐릭터가 모두 고유한 매력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한 편의 영화에 모두 설명해야 하는 탓에 정작 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감정이입을 끌어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너무 짧은 탓이다.

허겁지겁 이어지는 사연들은 다소 숨가쁘게 보인다. 이는 삼각관계(메리 제인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해리까지 넣는다면 사각관계라고 할 수도 있다) 로맨스 구도도 마찬가지다.

메리 제인의 심경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또 다른 여인 그웬의 캐릭터는 피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 뚜렷한 대조적 매력으로 삼각관계의 두 축을 이뤄야 할 두 여자 중 한 명인 그웬은 영화에서 그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정쩡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속편을 기대할만한 재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이다. 볼 때만큼은 이런 드라마상의 허점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슬쩍슬쩍 정리하면서 간간히 스펙터클로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샘 레이미의 연출력은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훨씬 더 정돈돼 있다.

다만 이미 <스파이더맨>보다 더욱 심도 깊고 흥미진진해진 <스파이더맨2>을 연출한 샘 레이미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등장한 <스파이더맨3>가 상대적으로 그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3>에는 예상치 못한 잔재미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악당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울림을 전해줌으로써 전편의 악당 닥터 옥토퍼스를 연상시키는 샌드맨을 연기한 토마스 헤이든 처치, 과장된 프랑스 억양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레스토랑 지배인으로 등장하는 레이미의 페르소나 브루스 캠벨, 심비오트로 인해 인격이 바뀌어 소심남에서 중증의 왕자병 환자로 변신하는 토비 맥과이어의 천연덕스러운 ‘느끼남’ 연기는 기꺼이 즐길 만하다.

시리즈 블록버스터가 언제나 그렇듯 속편에 대한 복선을 곳곳에 깔아놓는 것도 잊지 않는 <스파이더맨3>는 B무비의 총아에서 기적처럼 블록버스터 흥행 감독으로 변신한 샘 레이미의 재능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영화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속편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을 정도의 만족은 보장한다는 사실이다. 열광적으로 3편을 기다릴 때보다는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하겠지만 말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