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솔향기 흩날리는 백두대간의 속살을 밟다

송뢰(松籟). 솔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일컫는 말이다. 예로부터 솔바람 소리는 청아하고 기품이 있다고 하여 우리 조상들은 이를 듣고 즐겼다. 하물며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 최고의 기품을 지닌 금강송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삼척 준경묘(濬慶墓) 숲속에서라면 둘도 없는 호사다.

왕복 2시간의 행복한 금강송림 산책

삼척 활기리 농수산물센터 앞에 주차를 하면 산쪽으로 콘크리트길이 보인다.

이 길을 10분쯤 오르면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흔히 보듯 굽은 소나무가 아니라 대부분 몸통이 붉고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금강송이다. 이어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평탄한 흙길 양쪽으로 역시 금강송이 빼곡하다. 한 그루도 빠짐없이 모두 쭉쭉 뻗었다.

금강송이 굽어보는 산길을 20분쯤 지나 준경묘가 보일 때쯤이면 특이한 사연을 간직한 금강송 한 그루가 여행객을 반긴다.

수령 100년, 높이 30m쯤 되는 이 소나무는 지난 2001년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를 올린 이력을 지니고 있다.

당시 산림청 임업연구원은 점차 노쇠해 가는 정이품송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수형·체격·생식력·우수 형질 유전 여부 등을 따져 신붓감을 물색했는데, 이곳 준경묘에서 두 그루, 울진 소광천에서 두 그루, 평창에서 한 그루 이렇게 모두 다섯 그루를 찾아냈다.

이 소나무는 그중에서도 최후에 간택된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송이다.

두타산과 덕항산 사이의 백두대간 분수령 동쪽 기슭에 터를 잡은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아버지인 양무 장군의 묘.

목조는 전주에서 살 때 산성별감과 기생을 사이에 두고 다투다 사이가 나빠지자 처가인 강원도 삼척으로 피해왔다. 이곳에서 부친상을 당한 목조는 ‘4대 안에 왕이 날 자리’라는 도인의 말을 엿듣고 현재의 위치에 장사지냈다. 바로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이다. 또 나중에 모친이 사망하자 동산리에 장사지냈다.

그 후 산성별감이 삼척으로 부임한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그는 추종자 170여 명과 함께 다시 함경도 방면으로 이주했다.

나중에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른 뒤 조상의 음덕에 보답하기 위해 양무 장군의 묘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 세종 때 겨우 무덤을 찾아낸 뒤 성종 때 봉분을 보완하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러 논란으로 공사를 중지했다. 그리고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던 1899년에야 겨우 지금의 규모로 수축할 수 있었다. 당시의 성역화 작업 덕분에 이곳의 금강송 군락지가 아직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준경묘는 이런 역사성에다가 조선왕조를 낳은 천하의 명당으로도 알려져 있어 일반 답사객들은 물론 풍수가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준경묘의 진정한 보물은 누가 뭐래도 100년 이상 된 금강송들이 20~30m 높이로 장대하게 뻗어있는 숲이다. 그래서 환경단체인 ‘생명의 숲’은 얼마 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준경묘 금강송림을 ‘가장 아름다운 숲’ 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준경묘 트레킹을 위해서는 활기리 농산물집하장 앞에 주차를 하고 1.8km 정도 걸어가야 한다. 걷는 데만 왕복 1시간30분쯤 걸리므로, 금강송림의 장관도 즐기려면 최소 2시간 정도 잡는 게 좋다. 초입의 콘크리트길이 좀 가파르긴 해도 유치원생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주변엔 영경묘와 천은사 등의 볼거리도 있어

한편, 준경묘에서 4km쯤 떨어진 미로면 하사전리의 영경묘(永慶墓)는 양무 장군의 부인이 묻힌 곳이다. 얼마 전 준경묘와 영경묘 사이로 아스팔트 포장 도로가 뚫려 승용차로 5분이면 접근할 수 있다. 하사전리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산길로 200m쯤 오르면 묘가 나온다. 준경묘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준수한 금강송림이 펼쳐진다.

또 두타산(1,353m) 기슭에 자리한 천은사(天恩寺)는 고려의 문장가인 이승휴가 은거하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이다. 이는 민족문화와 민족사의 독자성에 대한 자부심을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술이다. 조선 말기에 준경묘와 영경묘를 수축할 때 이 절을 원당 사찰로 삼았던 인연이 있다.

여행정보

교통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동해고속도로→ 동해 나들목→ 7번 국도(삼척 방면)→ 단봉삼거리(우회전)→ 38번 국도(태백 방면)→ 미로면→ 영경묘→ 준경묘. 수도권 기준 4시간 소요.

△대중교통= 서울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삼척행 노선버스가 매일 10여 회, 부산 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4회, 대구 동부터미널(053-756-0017~19)에서 8회 운행. 삼척종합버스터미널 (033) 572-2085

△현지교통=삼척 시내에서 활기리까지 3회(06:50, 13:20, 17:50) 운행하는 시내버스(31-1번)를 이용해 준경묘 입구에서 내린다. 또는 수시로 운행하는 환선굴이나 도계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활기리 입구에서 하차해 1.5km 정도 걸으면 활기리 마을회관 앞이다. 20분 소요. 요금 1,100원. 삼척 시내버스 (033) 574-2686

숙식
준경묘와 주변엔 숙박시설이 없다. 준경묘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의 환선굴 입구에 민박집이 많다. 그중 굴피로 지붕을 얹은 민박집인 대이리굴피집(033-541-7288)에서 묵으면 좋은 추억이 된다. 작은방 2만원, 큰방 3만원. 골말에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산채비빔밥(5,000원)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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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 장군의 부인이 묻힌 영경묘.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