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 동쪽 간이역 바닷가로 떠나는 추억여행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대관령 넘어 동해로 가라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정말 사람의 일이 앞으로 어찌될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허나 어디 삶만 그러하겠는가. 길도 그렇고 마을도 마찬가지다. 강릉으로 가는 길에 대관령을 지나다보면 이젠 차량 통행이 뜸해진 옛 영동고속도로가 이런 상념에 잠기게 한다. 또 대관령을 넘어가서 만난 정동진이란 바닷가 마을이 그러하다.

파도에 휩쓸려버릴 듯한 바닷가 작은 간이역

광화문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다는 바닷가 작은 어촌 정동진(正東津). 여관도, 찻집도 없이 파돗소리에 묻혀있던 자그마한 어촌마을에 있는 정동진역은 그리움이 파도처럼 무시로 밀려드는 간이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 역은 1962년에 생겼다. 주변의 탄광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들이 폐쇄되고 주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자 96년 여객취급을 중지하고 역은 폐쇄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무렵 SBS <모래시계>가 방영된 이후 갑자기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97년 다시 문을 열게 된다. 당시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몰아넣으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수배를 피해 외딴 어촌에 내려와 숨어있던 혜린(고현정)이 경찰에 쫓기며 초조하게 열차를 기다리던 열차역.

그가 뒤를 쫓아온 경찰관에게 체포되던 바로 그 ‘소나무 한 그루 서있는 겨울바다 열찻길’의 슬프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진 곳이 바로 정동진역이었다.

해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왼쪽) 작은 간이역인 정동진역은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된 이후 우리나라 최고의 열차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오른쪽)
해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왼쪽)
작은 간이역인 정동진역은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된 이후 우리나라 최고의 열차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오른쪽)

적막하던 정동진역은 이렇듯 <모래시계>로 ‘열차여행의 신데렐라’로 극적인 회생을 했고, 이후는 상전벽해였다. 이곳 일출을 보려 몰려드는 여행객을 위한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고, 이정표도 변변치 않아 헤매기 일쑤이던 게 언제였나 싶게 고속도로 나들목부터 친절하게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정동진역을 통과해 바다로 가려면 정동진역 주차장(1시간 1,000원)에 차를 대고 입장료(500원)를 내야 한다. 대부분 사랑을 쌓아가는 연인들이지만, 아이들 손을 잡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늙수그레한 노부부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열찻길은 백사장과 바싹 붙어 있다. 여행객들이 기차를 기다릴 때 쓰이는 긴 의자는 열찻길 쪽이 아니라 바다 쪽을 바라보고 놓여 있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 파란 바다를 바라보는 맛은 정말 일품. 때맞춰 열차까지 지나가니 비록 초조하게 열차를 기다리는 그 여인이 없다 해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정말 그럴 듯하다.

여행객들이 해변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왼쪽) 광화문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음을 알리는 정동진 표지석. (오른쪽)
여행객들이 해변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왼쪽)
광화문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음을 알리는 정동진 표지석. (오른쪽)

물론 바다로 내려서는 계단이 있으니 신발 벗어들고 부드러운 백사장을 거닐며 새하얀 파도를 마음껏 희롱해보자.

연인들이라면 해안을 거닐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자유지만 자신들 뒤쪽 언덕의 긴 의자엔 언제나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해변을 걷고 나면 모래가 잔뜩 묻은 발이 문제이겠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이들을 위해 정동진역 측에선 역사 앞에 발을 씻는 전용 ‘세족대’도 만들어 놓았다. 정동진역 (033) 644-5062 http://jeongdongjin.go.kr

모래시계공원 등 볼거리 다양

정동진역 주변엔 보고 즐길 거리가 아주 많다. 우선 남쪽으로 500m 정도 내려가면 모래시계공원이 있다. 1999년 새로운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드라마의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조성한 이 모래시계공원(033-640-4533)은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모래의 부피에 의해 시간의 경과를 재는 장치인 모래시계를 테마로 했다.

우리 해군의 퇴역 함정과 북한군이 타고 침투한 잠수함이 전시되어 있는 통일공원. (왼쪽) 정동진의 모래시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데 꼭 1년이 걸린다. (오른쪽)
우리 해군의 퇴역 함정과 북한군이 타고 침투한 잠수함이 전시되어 있는 통일공원. (왼쪽)
정동진의 모래시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데 꼭 1년이 걸린다. (오른쪽)

모래시계는 지름 8.06m, 폭 3.20m, 무게 40톤, 모래무게만 무려 8톤에 이른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라 하는데,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꼭 1년. 매년 1월 1일 0시에 반 바퀴 돌려 위와 아래를 바꿔 새롭게 시작한다. 입장료, 주차료 모두 없다.

정동진역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해안 언덕의 정동진조각공원에 오르면 조각 작품은 물론 정동진역 주위의 경치와 맑은 동해 바다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 어른 5,000원 소인 3,000원.

이뿐만이 아니다. 정동진에서 북쪽 해안도로를 달리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조성한 예술정원인 ‘하슬라 아트월드(033-644-9411~3)’가 있다. ‘하슬라’는 신라 시대 때 강릉을 일컫던 이름. 이 정원은 인위적인 가공보다는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해 자연스럽게 꾸며 놓아 좋다. 관람료 어른 5,000원, 소인 4,000원.

이어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는 약수가 샘솟는 등명낙가사에 들러 약수 한 모금 마시고 동해를 벗어나면서 안인진에 있는 강릉통일공원(033-640-4470)도 들러보자.

이곳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무장 잠수함이 침투한 것을 계기로 안보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개관했다. 우리 해군의 퇴역 함정과 북한군이 타고 온 잠수함도 전시되어 있다. 관람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 1,000원.

여행정보

교통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 동해고속도로(동해 방면)→ 강릉 나들목→ 456번 지방도→ 7번 국도→ 해안도로→ 통일공원→ 등명낙가사→ 정동진역. 수도권 기준 3시간 30분 소요. △대중교통= 강남터미널(06:00~21:00)과 동서울터미널(06:30~20:30)에서 수시 운행. 3시간 10분 소요, 1만 8,400원. 강릉→ 정동진= 강릉 시내(동부시장, 신영극장, 남대천)에서 111, 112, 113번 109번(좌석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 40분 소요.

숙식
정동진역 앞에 모텔, 민박 등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딸부자막국수(033-644-6906)집에서 꿩만두국(5,000원), 막국수(4,000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이외에도 횟집 등 식당이 아주 많다. 썬크루즈리조트(033-610-7000 www.esuncruise.com)는 바닷가 절벽 위에 서있는 유람선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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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