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엡스타인 외 지음·김시현 외 옮김 / 민음in 발행·각 권 9,000~10,000원

‘왜 저치들이 갖고 있단 말인가? 내가 아니고?’ 살면서 이런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면 당신은 시기심의 포로일 가능성이 높다. 너무 잘 숨겨진 나머지 타인은 물론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욕망.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릴 일은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판에 시기만큼 일상적인 욕망도 없으니. 문제는 단지 배만 아픈 게 아니라 상대를 추락시키기 위해 자신마저 함께 던져버리는 데 있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 불교연구자 등 7명이 기독교의 7가지 죄악을 화두로 뭉쳤다. 뉴욕 공립도서관과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기획한 이 시리즈는 개성 넘치는 저자들의 맛깔스런 ‘죄악 요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손에 쥐어진 번역본의 앙증맞은 생김새도 뭔가 재미난 생각들이 숨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미국인의 속물 근성에 정통한 비평가 조지프 엡스타인의 <시기>는 죄악의 도입부로 매우 적절하다. 시기는 탐욕이나 자만 등 다른 욕망들의 뿌리이고 가지인 탓이다. 그의 통찰은 매우 솔직하며 재치가 있다.

시기심이 남다른 사람을 판별하는 법부터가 그렇다.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자주 냉소를 날리는 자, 지나치게 칭찬을 남발하는 자’. 혹시 나도? 뜨끔하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속한 문단이나 학계가 유난히 시기심이 들끓는 분야라고 말한다.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는데’라는 생각 때문이란다. 경쟁자와 차이가 작을수록 시기심은 커지는 법.

맛보기로 <시기>를 읽었다면 다음엔 자신이 휘둘린다고(?) 생각되는 욕망의 순서대로 책을 골라잡아도 상관없겠다.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이 고민스럽다면 <탐식>을, 치솟는 분노를 누르기 힘들다면 <화>를, 자부심과 교만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자만>을, 원하는 게 너무 많으면 <탐욕>을, 떳떳하게 누워 있고 싶다면 <게으름>을, 쾌락을 죄라고만 여긴다면 <정욕>을 말이다. 손에 들고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 읽는 부담도 적다.

<게으름>이 대표적인데, 다만 출근길에 읽는 건 삼가야 될 듯하다. 노동의욕이 사라지고 그물침대에 눕고만 싶어질 터이니. 어느새 ‘치우지 말라, 씻지 말라, 세상에 급한 일은 없다’ 등등의 게으름 십계명에 중독되리라. 물론 역설적이게도 ‘울트라 게으름뱅이’는 일중독자이지만.

<화>는 만만치 않다. 고통을 스파링 상대로 삼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용서가 자신을 지키는 힘이라는 저자의 말은 문자로만 이해하기엔 부족한 느낌이다. 인용되는 불교경전도 알듯 모를 듯하다.

더구나 달라이 라마가 자신을 핍박하던 마오쩌둥을 존경한다고 말했다는 대목은 갸우뚱할 수밖에. 화를 삭히기 위해선 시간을 걸리듯 대충 넘기기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분야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 <탐식>이 죄악일까?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너무하다 싶지만 탐식은 불경죄다. 신(神) 대신 인간의 ‘배’를 경배하기 때문. 그리고 욕망을 추구한 흔적이 온몸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감추기도 불가능하다.

재미나는 건 중세의 수도사들이 탐식의 죄를 설파하면서 축제일만 되면 미친 듯이 먹어대는 대식가들이었다는 점이다. 신의 지혜로운 종이었던 토마스 아퀴나스도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다이어트의 시대엔 탐식은 용서받지 못할, 그러나 자본가들에겐 황금을 낳는 욕망이 되어버렸다.

이 시리즈의 미덕은 7가지 욕망을 죄악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인문학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로잡히고 때로는 인생을 망가뜨리는 욕망들. 하지만 욕망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라면 크게 상심할 일은 아닌 듯하다.

이미 반세기 전 같은 기획을 내놨던 007시리즈의 작가 이언 플레밍의 말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세상에 이런 죄악이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따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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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