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마케팅을 말하다 / 호르헤 A. 바스꼰체요 지음·안기순 옮김 / 비즈니스맵 발행·13,000원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건 1965년이었다. 그 즈음 도요타의 생산능력은 연 50만 대 수준. 그러나 도요타는 그 후 7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준소형차 ‘코로나’를 100만 대나 팔았다.

지금의 도요타를 생각하면 대단치 않은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일본산 자동차는 싸구려로 취급되었고 GM·포드 등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후 어떻게 공룡 GM을 추월하고 세계 1위로 질주할 수 있을까. 단지 일본 특유의 탄탄한 기술력만으로 이룩한 것일까. 아마도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00명으로 수천 명을 이길 수도, 수천 명으로 100명에게 질 수도 있게 하는 것이 ‘전략’이다. 책은 전쟁과 비즈니스가 다르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 비즈니스 전략 매뉴얼이다.

뼈대는 게릴라, 우회, 측면, 정면, 비차별화 포위, 차별화 포위의 6가지 공격전략과 신호 보내기, 진입장벽 설치, 포괄적 산업, 선제공격, 봉쇄, 역습, 진지고수, 철수의 8가지 방어전략.

전쟁 상황을 떠올리면 대강 감이 잡히기도 하지만 수많은 경쟁자가 존재하는 비즈니스는 간단치 않다. 때문에 책은 시장(고객)을 만들어내는 마케팅이 주먹구구가 아닌 치밀한 전략·전술의 소산이라는 걸 깨우쳐준다.

강력한 리더가 있는 시장에 진입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우회공격이다. 책에서 전략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용어가 세그먼트(segment)인데, 쉽게 생각하면 사업구획 정도 되겠다.

우회공격은 기존 리더의 세그먼트를 피하지만 장기적으로 리더의 시장(고객)을 빼앗을 수 있다. 도요타는 우회공격과 지역집중화 전략으로 미국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들이 처음에 한 일은 물론, 미국 시장에 대한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분류하여 그 성격에 알맞은 상품을 제조, 판매하는 활동) 매트릭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광범위한 자료와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분류에서 도요타는 경쟁자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세그먼트인 서브컴팩트카(준소형차)를 찾아냈다.

우회전략의 성공을 이끄는 핵심은 리더의 봉쇄를 피하는 것. 이를 위해선 리더의 주요 사업보다 단위마진이 낮아야 한다. 그래야 리더가 그냥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GM·포드는 도요타의 진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때마침 미국의 소비자들은 덩치만 큰 차보다 기름이 덜먹는 경제적인 모델을 원했다. 도요타는 그렇게 2,000달러짜리 ‘코로나’ 하나를 가지고 성공의 첫발을 내딛었다.

반면 공격에 맞선 방어는 시기,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브리스톨마이어가 존슨&존슨의 타이레놀과 화학적으로 동일한 다트릴(Datril)이라는 제품을 10% 싸게 내놓기로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정면공격에 나선 것이다. 존슨&존슨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다만 다트릴이 출시되기 전날 밤, 타이레놀의 모든 거래상인에게 가격을 10% 내리라고 지시했다. 다트릴은 기습을 당했고 존재 이유를 잃었다.

책은 이 밖에도 동맹의 형태와 수행 기준을 짚어준다. 물론 동맹 또한 전략에 따라 결정되고 기준에 미흡하다면 홀로 움직여야 한다.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No)’, 즉 ‘어떤 것을 피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각각의 전략마다 수많은 기업의 사례를 들어 현장감을 살리고 있다. 언급되는 기업이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하기도 벅차다. 하지만 강조점은 하나다.

‘법칙을 따르라’. 비즈니스에서도 운이나 외부 변수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성공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전략 매뉴얼을 체득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운도 비켜가지는 못할 것 같다.

경영학의 상식에 가까운 BCG(보스턴컨설팅그룹) 매트릭스를 잘못 그려 놓거나, 도표의 수량을 높고 낮음으로 표기하는 등 편집의 무신경은 옥에 티다. 경영학이 도표로 정리되는 학문이라는 걸 떠올린다면 책의 신뢰도를 위해 꼼꼼한 점검은 필수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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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