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뮤지컬을 꿈꾸는건 욕심?

만약 당신이 아직 단 한 번도 뮤지컬을 보지 않은, 호기심 많고 끼 많은 누군가라면 부디 이 작품으로 첫 대면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뮤지컬에 대한 실제 이상의 환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직접 무대에 오르고 싶어지거나 적어도 무대를 만드는 스태프라도 되고 싶어질지 모른다.

이 공연은 연극 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허용된 상상과 비현실성, 창작성을 최대치로 활용해 감동에 가까운 재미를 선사한다. 의심할 바 없는, 장수의 비결이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이 초연 후 6년째 주목을 받고 있다. 대담하게도, 세익스피어 원작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세익스피어의 본토까지 찾아가 선보인 작품이다. 2006년 한국 연극 사상 처음으로 영국 바비칸센터에서의 공연 기록을 남긴 화제작이기도 하다.

기발한 도깨비불의 난무로부터 공연은 시작된다. 출발부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객석의 탄성 속에서 세익스피어의 원작이 가진 기본 얼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동양식 한바탕 꿈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깨비(돗가비)들이 활개치는 마을 안에서 인간 ‘항’과 ‘벽’은 안타까운 사랑을 나눈다. 벽은 집안에서 정해준 정혼자 ‘루’에게 곧 시집을 가야 할 운명이다. 결국 항은 벽과 함께 야반도주를 결심한다.

벽의 정혼자 루에게는 그를 짝사랑하는 익이 뒤따라 다닌다. 사랑의 도피계획을 눈치 챈 익에 의해 항과 벽의 야반도주는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한편에는 바람둥이 도깨비 ‘가비’가 바람을 핀다. 이를 알게 된 가비의 아내 ‘돗’이 개입하면서 남편 가비의 ‘헛꿈’도 엉뚱한 모양으로 빗나가기 시작한다. 모두 돗의 아우인 2인조 도깨비 두두리의 활약 덕분이다.

그런데 덜렁대는 두두리가 독초 향으로 장난을 치던 중 실수를 저지르면서 항과 벽, 루와 익, 가비와 약초꾼 아주미 사이에 웃지 못할 사랑의 추격전이 벌어진다.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연출을 맡은 양정웅의 재능이 공연 전반을 통해 강력한 기(氣)를 발산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공연에는 엑스트라도 따로 없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독특한 캐릭터로 집중시선을 받아낸다.

배우들 자신의 능력이기도 하다. 대사와 춤사위, 또는 표정, 이따금은 아크로바틱 수준의 율동에 이르기까지 각자 가진 재간과 매력을 임계치까지 쏟아내고 있다. 정해균, 채국희, 김준호, 김지령, 이성환, 이진, 박소영 등 전 출연진이 ‘연극적 발상과 표현의 맛’을 화려하게 구사하고 있다.

의상이나 소품 등에 사용된 색감과 독특한 동양풍의 무대 분장, 안무, 음악 처리도 인상적이다. 동양의 공연문화가 가진 차별적인 매력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무용극이라 보아도 좋을 만큼 마임과 현대무용, 고전무의 특징들이 고루 드러나는 몸짓 연기도 볼 만하다.

무대 안쪽으로 별도 공간을 만들어 배우들이 서로 교대해가며 직접 타악기나 관악기 등 이름조차 다 알 수 없는 악기들을 이용해 극중 반주와 음향효과를 맞추어낸 점도 발상부터 참신하다.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와 거의 오차없이 호흡이 맞는다. 작품의 흐름에 대한 배우들의 이해와 연습량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한여름 밤의 꿈>은 무덥고 답답한 여름날, 예고 없이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고 유쾌하다.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 강도 높은 소나기다.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8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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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