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에 서린 민초들의 꿈… 승병들 구국의 흔적도

금산사의 대표 건물인 미륵전(국보 제62호).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쪽은 하나로 트인 통층팔작지붕의 다포집이다.
호남고속도로 금산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금산면의 원평장터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향하면 곧 모악산(母岳山, 794m) 품으로 들어서게 된다.

모악산은 ‘엄뫼’, 곧 ‘어미산’이란 우리말을 한자로 바꾼 것이니, 넓고 기름진 김만평야에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산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후백제의 견훤이 갇혀 있던 미륵전

모악산 기슭에는 한때 금산사·귀신사·대원사·수왕사 등의 사찰과 무려 8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품은 여느 산에 견주어 그다지 크지는 않으나 평야지대 백성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음을 알 수 있다.

모악산의 대표 사찰인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백제 법왕 1)에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고, 통일신라시대인 766년에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미륵불의 출현을 염원하는 민초의 꿈이 서려있는 사찰로 변모했다.

옛 백제 땅인 김만평야의 만경 고을에서 태어나 8세기 중반에 활약한 고승인 진표율사는 금산사에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미륵신앙의 터전으로 다졌던 것.

율사는 미륵신앙에서도 석가모니가 입멸한 56억7천만 년이 흐른 뒤 미륵이 이 땅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서 세 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하생신앙을 설파했는데, 이후 금산사는 미륵신앙, 즉 법상종(法相宗)의 대표적인 근본 도량이 되었다.

백제 후예의 한과 꿈이 서린 금산사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는다.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을 깨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도모하던 그에게 당시 백성들의 희망이던 미륵불의 보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때문에 그는 미륵도량인 금산사에 정성을 많이 들였다.

그러나 그가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맏아들 신검과 둘째 아들 양검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미륵전 지하에 가둬 버렸다.

석달 동안 미륵전 지하에 감금당했다가 탈출한 견훤은 왕건에게 투항했고, 왕건과 함께 군대를 끌고 내려온 견훤은 왕건이 황산벌에서 신검의 군대를 무찌르는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후백제의 허망한 최후였다.

고려시대인 1069년에는 혜덕왕사가 절을 중수하여 88당 711칸의 대사찰로 변모시키면서 금산사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금산사에서 만나는 목조 건축물들은 거의 임진왜란 이후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 사명대사와 함께 ‘구국 3화상’이라 불리는 처영대사가 금산사를 중심으로 승병을 일으켜 활동하자 정유재란 때 왜군이 금산사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현재 경내에는 국보와 보물 등 나라에서 지정한 수많은 문화재가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미륵전은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쪽은 하나로 트인 통층팔작지붕의 다포집이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린 게 특이하다.

미륵은 본래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중 하나로 자씨(慈氏)보살이라 불리기도 하니 존칭하여 대자보전이 되었고, 용화지회는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여 미륵불이 된 후 세 차례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제도한다는 용화삼회(龍華三會)의 다른 표현이다. 모두 미륵을 모신 법당이란 뜻임을 알 수 있다.

법당 안에 모셔진 삼존불 중 미륵불상은 11.82m, 좌우불상은 8.8m나 된다. 옥내 입불로는 세계 최대라 하는데, 통층이라 이렇게 큰 부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이다.

■ 1400년 역사 깊은 절집에서의 특별한 산사체험

이렇듯 유서 깊은 사찰에서 하는 산사체험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예불·참선·산행·신행상담·다도·108배를 기본 프로그램으로 하며, 몇 년 전부터 차나무 관리와 거름주기, 찻잎 따기와 덖기, 차 마시기, 그리고 직접 덖은 차를 가져갈 수 있는 차밭 체험 프로그램 등이 추가로 마련되었다.

불교공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선(禪)-나를 깨치다’는 6박7일(200,000원)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자유로운 체험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산사체험과 달리 정해진 일정에 따라 엄격한 통제가 따른다.

템플 스테이 전용 공간은 대숲과 개울이 조화를 이룬 서래선원. 7월 일정 중 14~17일(3박4일)은 19세 이상으로 1인당 120,000원, 여름방학을 맞이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27~29일의 어린이캠프(10~13세)는 1인당 50,000원. 전화 063-548-4441~2, 010-6589-0108 www.geumsansa.org

금산사 문화재관람료는 어른 2,500원, 학생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는 없다. 관리사무소 전화 063-540-3539

여행정보

■ 교통

△자가운전=서해안고속도로→서김제 나들목→29번 국도→김제→712번 지방도→금산사 /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금산사 나들목→원평→금산사.<서울 기준 3시간~3시간30분 소요>

△대중교통=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매일 5회(07:40 09:50 12:30 14:20 17:40) 운행. 3시간30분 소요, 요금 11,500원. 이외에도 인천종합터미널(032-430-7114)에서 6회(08:10~18:20),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042-624-4451)에서 5회, 전주공용터미널(063-270-1700)에서 14회(07:25~17:46) 운행.

△현지교통=김제 시내에서 금산사까지 매일 26회(06:30~21:20) 운행. 40~50분 소요, 요금 1,400원. 김제 안전여객 063-547-6121

■ 숙식

모악산 인근에는 모악산유스호스텔(063-548-4401), 모악산장(063-548-4411) 등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10여 곳의 민박집이 있다.

금산사 주차장 상가지역에는 광주회관(063-548-4038), 군산식당(063-548-0069), 한국회관(063-548-0217) 등 십여 군데의 식당이 있다. 대부분 산채백반 등을 차린다. 금산사 매표소 안쪽 물가에 500여 명 수용 가능한 금산사 야영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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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들의 수계 의식을 집행했던 방등 계단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석종형 부도(보물 제26호)와 오층 석탑(보물 제25호)이 있다.
금산사 대장전(보물 제827호). 이 건물이 본래는 목탑이었음을 알려주는 복발과 보주가 지붕 용마루 가운데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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