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분 후의 삶 /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 발행 / 9,800원

여기 죽음의 문턱에서 생으로 다시 초대받은 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히말라야의 눈사태에서, 인도양의 한복판에서, 암흑의 지하미로에서, 추락한 비행기에서 그들은 살아 남았다. 단지 운이 좋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극한의 체험이었다. 생의 손을 놓치려는 순간, 그들을 다시 잡아 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은 작가로 전업한 기자의 논픽션이다. 하지만 단순한 인터뷰 모음은 아니다. 생존자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절박한 순간을 투명하게 묘사해낸다.

예를 들어,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추락의 순간을 “그런 기억이 호리병 속의 물 같은 거라면 누군가 거꾸로 쥔 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낸 것만 같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생생한 육성과 사유적인 문장의 만남이 빚어내는 생사의 현장은 너무도 또렷하게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그래서 20, 30페이지의 짧은 분량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려지고 영원과 같은 순간이 흐른다.

17년 전 상선을 타고 인도양을 항해하던 임강룡씨는 야간근무 중 너울 파도를 맞고 배 밑으로 추락해버린다. “단 한 사람의 목격자도 없는 갑판 위에서, 단 한 사람의 구조자도 없는 인도양 속으로” 말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그를 살려주려고 나타난 것처럼 거북이 한 마리가 그의 배아래 닿았다. 생각만으로도 암담한 상황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는, 구조됐다.

등반가 이현조씨는 히말라야의 루팔벽에서 판형상의 눈사태를 만나 4,000미터의 절벽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수없이 피켈을 내리꽂았지만 도저히 멈춰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몸부림 치는 것, 백 번을 해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불과 한 번만에 일어날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그 한 번을 붙잡는다”는 마음가짐이 그를 살렸다.

사실 먼 바다에 나간다거나 히말라야를 오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이미 위험을 품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망년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맨홀에 빠진다거나 귀로의 끝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낚시를 다녀오는 길에 여객선이 침몰하는 일은 어떤가.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절망으로 모든 걸 포기할 것 같은 순간 말이다. 하지만 책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생의 극한에 닿게 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삶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나는’ 또는 ‘그는’으로 서술되는 열 두 명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각기 다른 경험으로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지나친 걸 반성한다.

그리고 “캄캄하게 흘러가는 그 모진 시간 속에서도 생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고 그 고요한 격려를 느꼈기에 1분 후의 삶을 염원할 수 있었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죽음을 지나오자 삶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빛나는 인간애는 촉촉이 마음을 적신다.

폭발하는 배 위에서 생명줄인 튜브를 다른 이들에게 던져주고 죽어간 항해사,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해발 7,450미터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무사히 하산시킨 등반가 등등. “양심의 생존이 더 소중하다”는 이현조씨의 말은 그래서 오래 가슴에 남는다.

히말라야의 크레바스에 추락해서도 살아나온 그였지만 지난 5월 에베레스트의 눈사태는 끝내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강인하고 아름다운 영혼이었는지 책은 담담히, 그러나 감동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 여객기가 추락해 한국인 관광객들이 목숨을 잃었다. 영정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얼굴들을 보노라면 덮쳐오는 재난에 속수무책인 삶이 허탈하기만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죽음 앞에서 삶의 강렬함과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의미 없는 삶은 없으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기꺼이 누려야 된다는 것을. 책을 덮는 순간, 다시 펼쳐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은 그 깨달음을 오래 담아두고 싶어서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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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