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현장 '아! 광주여'참혹한 현대사의 아픔 속에 로맨스·코미디·액션 등 상업적 요소 적절히 가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더러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부모를 잃고 미쳐버린 한 소녀를 통해 우회적으로 광주를 다루었던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나, 80년 광주에 진압군으로 가담한 끔찍한 기억을 다룬 <박하사탕>,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수배 중인 운동권 인사의 후일담을 그린 <오래된 정원> 등은 광주의 상흔이 남아있는 자들에게 찍은 고통스러운 낙인을 형상화했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는 위의 영화들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광주의 그날을 다루는 영화다. 약 열흘 가량 계속되었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현장을 별 가감 없이 재현하겠다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 80년 광주, 무슨 일이 있었나?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그린 최초의 영화라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는 개봉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꼼꼼한 고증과 많은 물량이 동원된 100억원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 급 제작 규모도 화제가 되었다.

광주의 비극이 벌이진 지 27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그 날의 처참한 광경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감회는 이 영화를 단순한 영화 이상의 특별한 지위에 올려놓았다.

1980년 5월의 광주. 택시기사 민우(김상경)는 고등학생인 동생 진우(이준기)와 단 둘이 살며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를 짝사랑하고 있다.

진우의 무언의 지원 아래 신애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민우의 행복한 나날들이 계속된다. 세 사람이 함께 극장을 찾은 어느 날, 무자비한 계엄군이 학생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살상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진우가 시위대에 앞장서고, 진우의 안위를 걱정하던 민우는 진우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시대의 폭압적 얼굴과 마주한다. 퇴역 장교 흥수(안성기)를 중심으로 무기고를 탈취한 시민들은 열흘 동안 계엄군과의 격렬한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맞서는 그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비극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김지훈 감독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시대적 비극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전형적인 드라마를 통해 상업영화로서의 장점을 잃지 않으려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시민들의 분노는 이 영화에서 민우 형제를 비롯한 일군의 캐릭터들을 통해 재구성된다.

참혹한 현대사의 아픔 속에 감독은 로맨스와 코미디, 장렬한 드라마와 액션 등 상업영화를 구성하는 흥미의 요소들을 모두 집어넣었다.

이러한 전략은 사건이 주는 무거움을 장르적인 설정들을 통해서 돌파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없이 죽어간 이름 모를 시민들은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운전기사로, 서울대 법대를 목표로 하는 똘똘한 모범생으로, 애 딸린 젊은 가장으로 변모한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는 실제 사건의 영화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캐릭터들이 지니는 전형성이 영화 전체에서 광주의 특수성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 광주를 다루는 가장 쉬운 방식

광주민주화운동의 가장 끔찍한 점은 군부의 정권 장악을 위해 벌어진 적과 아군이 없는 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빨갱이를 소탕해야 한다는 명분에 세뇌당한 군인들의 광기와 죽기 살기로 자신들의 터전을 사수하려는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킨 권력자의 욕망은 이 영화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광주가 아니라 어떤 외국의 내전을 대입시켜도 무리 없을 만큼 선과 악, 직접적 희생자와 가해자가 뚜렷이 나누어져 있는 탓에 영화는 오히려 낯설게 보인다.

악당과 영웅의 대결이라는 할리우드 고전 장르의 관습에 따라 진행돼 갈수록 그 진정성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전형적인 악당으로 묘사되는 계엄군 장성 최훈기 준장은 이 비극 안에 거대한 권력의 메커니즘이 도사리고 있음을 쉬이 잊게 만든다. 그의 캐릭터는 태생적인 악당이며 비극의 효과를 위해 동원된 장치일 뿐이다.

그는 극중에서 퇴역 장교인 흥수가 광주 사태 직후 전장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할 때 차갑게 거절하는 냉혈한이다(심지어 이러한 전개는 흥수가 ‘전 장군’을 만났더라면 일이 해결되었을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암시를 덧붙인다).

악의 근원을 단순화 시켜 쉽사리 드러냄으로써 드라마의 선악 구도는 더 없이 명확해지지만, 광주의 혼란과 광기, 그 씻을 수 없는 원죄는 선악 구도의 드라마틱한 배경으로 밖에 기능하지 않는 것이다.

실화가 주는 무게는 연출자에게는 버거운 짐이다. 희생자와 가해자가 엄연히 지켜보고 있는 광주 사태를 영화화한다는 것은 감독에게 감당하기 힘든 큰 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광주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맥락들을 간과한 것 같다. 장르의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세워놓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화려한 휴가> 곳곳에 숨어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비극 보다 더욱 가슴을 치는 장면들은 아버지를 잃고 목놓아 우는 어린아이, 자식을 떠나보내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이다. 적어도 광주민주화운동 만큼은 그 실화의 힘을 믿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화려한 휴가>는 80년 광주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만 진정으로 광주의 비극을 형상화하거나 그것이 지닌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지는 못한다.

광주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 영화는 ‘실화’라는 가정만을 제외한다면 범상한 전쟁 비극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충실하게 재현하겠다는 의지와 상업영화로서 필요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가 썩 잘 어울렸다는 느낌을 갖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