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살기 싫어' 모녀의 갈등과 화해 훈훈한 감동

연극 '사건발생 일구팔공'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란 말은 비단 연속극에만 등장하는 말이 아니다. 자아가 강한 요즘 세대 딸들에게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 엄마의 모습은 동경이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다.

그러한 엄마와 딸 세대의 간극과 갈등, 그리고 화합을 다룬 공연 2편이 한여름의 문화가를 달군다. 화려한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알짜배기 작품들이다.

순대국집 모녀의 얼큰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는 8월 10일부터 10월 7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다. 지난해 말 초연 이래 다섯 번째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생명력이 있다.

실제 서른 세 살 처녀 세 명(연출 오미영, 음악감독 노선락, 제작감독 추민주)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강점. 30대 노처녀로서 느끼는 인생에 대한 불안감과 엄마와 소통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대한 질펀한 수다가 넉넉한 웃음과 감동으로 배어 나온다.

주인공 지선은 순대국집 딸이지만, 순대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녀와 가장 커다란 갈등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 엄마, 박정자 여사.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서른 셋에 시집도 못 가고 일정한 월수입도 없이 빈둥거리며 한밤중엔 괴상한 노래만 불러대는 딸이 엄마는 못 마땅하다.

딸도 엄마가 원망스럽다. ‘순대국집 아줌마’의 초라한 모습이 싫다. 그러한 딸이 ‘엄마의 과거’로 들어가 엄마 아빠의 연애시절을 지켜보면서 부모님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는 ‘타임머신’식 설정은 전도연 주연의 영화 ‘인어공주’와 닮아 있다. 처녀시절 그토록 맑고 고운 엄마가 자신을 임신하게 되면서 억척스러운 엄마로 변하는 과정은 세월의 흐름처럼 속절없다. 자신을 임신하고 있는 나이 어린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가슴이 아려온다.

70년대 포크송 분위기로 만들어진 뮤지컬 넘버는 세대간의 화해를 그리는 이 작품에 힘을 불어넣는다. 서른 세 살 노처녀의 까칠함과 70년대의 낭만의 공존한다. 한 번만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순대쏭’, 실제 70년대 히트곡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포크송의 낭만이 느껴지는 ‘그대를 처음 본 순간’등이 맛깔스럽다. 엄마와 딸이 함께 보면 즐거움이 배가 될 만한 ‘세대공감’뮤지컬이다. (02) 2230-6631

8월 19일까지 대학로 쇼틱씨어터 2관에서 공연되는 연극‘사건발생 일구팔공’(김한길 작,연출)은 한숨이 턱 나올 만큼 비루한 소시민의 모녀 3대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다루고 있다.

모진 시집살이 겪고 한으로 죽어서도 딸 곁은 맴도는 순래와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그의 딸 정자, 정자의 정신지체 장애인인 딸 순희, 선희의 삶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정자의 큰 딸은 오래 전 집을 나가 자살했고, 순희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으며, 선희는 의붓엄마인 정자에게 벽을 쌓고 있다. 몹시 무겁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춘천 거기’ ‘임대아파트’ 등으로 젊은 세대의 감성을 연극적으로 풀어내는 탁월한 재주를 보인 연출가 김한길 특유의 재미와 문제의식이 오래도록 여운을 주는 수작이다. (02) 76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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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