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기의 슬픈 전설 머금은 함초롬한 상앗빛 꽃송이

풀 보러 길을 떠나기가 가장 겁나는 시기이다. 휴가철의 절정속에 있다 보니 풀과 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과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는 지루한 교통체증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이는 곳에만 모이는 까닭에 그 사이사이 깊은 산골짝엔 하직도 여유롭고 한적한 곳이 지천이고 이즈음 그 숲엔 동자꽃이며 마타리 이러저러한 나리꽃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만 그래도 아직 그 숲에서 함초롱히 피고 있는 다소곳한 초롱꽃이 있어 더 좋다.

누군가 초롱꽃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꽃빛을 가진 꽃이라 칭찬하였다.

흰 꽃이라 말하긴 하지만 그냥 희지도 않은 따뜻한 흰빛의 꽃송이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매력이 있고 순박하면서도 수려하고 정감어린 그런 색과 모양을 지닌다. 이름 그대로 초롱을 닮은 모습으로.

초롱꽃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산에서 만나지만 다가서기 어려운 깊은 곳이 아니라 그냥 산자락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초롱꽃에는 땅속에 옆으로 기면서 자라는 줄기가 발달하기도 하므로 보통은 초롱꽃이 피어 있는 곳은 의례 한 무리를 볼 수 있다.

손가락 길이만한 잎새, 초롱을 닮은 상아빛 꽃송이는 자세히 보면 연한 자주 빛 점들이 박혀있어 귀엽기도 하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피기 시작한 꽃송이들은 여름이 한창인 지금까지 여전히 피고 지고를 계속한다.

초롱꽃은 마당에 키워도 넓고 둥군 화분에 가득 심어 놓고 보아도 좋다. 모습도 보기 좋고 꽃도 오래피고. 다만 먼저 피었다가 진 누렇게 시든 꽃잎도 함께 남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씨앗 받을 것이 아니라면 따주면 그만이다.

초롱꽃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어린 잎은 물에 살짝 데쳐 무쳐먹기도 하고 이즈음엔 샐러드의 재료로 넣기도 한다. 꽃을 먹기도 하는데 초롱같은 꽃잎 속에 이런저런 음식을 함께 담아 멋 부린 밥상을 만들기도 한다.

초롱꽃에는 슬픈 이야기가 하나 전해진다. 어느 마을에 성문앞에 종지기가 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늙은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가 다리를 잃고부터 종지기가 되어 평생을 살아온 착한 사람이었다.

하루 세 번 종을 쳐서 사람들에게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과 밥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그에겐 삶의 큰 기쁨이었고 보람이었는데 새로 부임한 포악한 성주는 그 종소리가 마음에 들이 않는다고 종치기를 금하였고 삶의 의미를 일은 종지기는 마지막 종을 치고 종각에서 몸을 던져 죽고 말았으며 그 자리에서 종의 모습을 하고 맑은 종지기의 마음같은 빛깔을 한 꽃이 피어났는데 바로 초롱꽃이었다.

무엇인가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변화에 익숙해진 이즈음. 초롱꽃이 된 종지기의 삶은 생각할 수록 반향을 가지고 가슴에 닿는다.

은은하고도 독특한 모습을 한 초롱꽃이 우리에게 주는 애정 어린 메시지같다. 초롱꽃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 여름 그 숲가에서 말없이 피어 있을지 모르겠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