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는 OK, 맛은 글쎄…인기 소재 엽기 수사극… 부대끼는 유머·진부한 대사 아쉬워

“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당신이 진짜 사람을 죽였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 넷(용의자 포함)의 팀웍이야! ”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기마루 형사가 숫제 노골적으로 용의자의 혐의와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동경 경시청의 형사부장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흐르면서 무대가 드러난다. 에너지 과잉의 열혈형사 기무라, 끼와 패기의 젊은이 구마다 형사, 정체가 묘연한 엽기녀 하나꼬 형사 등이 모여있다.

이들은 아다미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고 있다. 형사들이 지목한 것은 모모따로다. 용의자를 에워싸고 세 명의 형사들은 광기에 찬 ‘수사 쇼’를 벌인다. 모모따로를 용의자로 기정사실화하며 몰아세운다.

용의자는 차라리 빨리 자백한 뒤 후련한 마음으로 사형대에 가야겠다는 결심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수상한 취조는 형사들의 사전 각본에 의한 것이고, 용의자는 구마다와 하나꼬의 사랑을 이어주며 사형장으로 향한다.

범죄나 수사 관련 소재는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좋은 인기 메뉴중 하나다.

배경의 특성 하나만으로도 가산점을 따고 들어간다.

서울 대학로 아트홀에서 상연중인 연극 <아이시떼르>도 살인사건을 둘러싼 수사 현장을 다뤄 시작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 하다. 게다가 ‘명랑 엽기 수사쇼’라는 수식까지 붙어 있다. 그런데 결과가 웬지 엉거주춤하다.

인기 재료에 대한 ‘차별화’ 요리법의 부담이 컸던 듯 하다. 스토리의 큰 얼개만 보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독특한 작품이지만, 요즘 국내 연극가의 대세인 코믹적인 ‘조미’가 불안정하게 뒤섞이면서 작품의 정체성이 오히려 애매해 보인다.

유머를 유도하는 언어적 감각도 최근 트렌드에 비해 한 템포 늦어 보인다. 대사가 다소 진부하다.

즉석의 반응 또는 코믹에 대한 강박감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대신 이 작품의 독특한 구성이 갖춘 도발적인 엽기성과 진중한 인간 심리 묘사에 전력투자한다면 보다 최대치의 결과를 얻지 않을까, 아쉽다.

캐릭터별 연기는 충실하고도 무난하다.

매 대사마다 열변을 토하듯 강한 속도감과 파워를 구사하는 기무라 형사, 수시로 카멜레온처럼 급변신하는 하나꼬의 다역 소화, 구마다가 표현하는 젊음 특유의 즉흥성과 사랑관, 그리고 모모따로의 어수룩하고 고집스러움이 잘 표현되고 있다. 연기자들의 열정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 없다.

조명과 음향효과도 다소 거칠어 보인다. 작품에 들여놓은 음악의 선곡도 어딘가 생뚱맞다.

추억의 국내 가요, 귀익은 팝송 등이 실황으로 불려져 일본 배경의 스토리에 뜨악한 느낌을 준다. 기모노 차림에 갓을 씌운 기분이다.

공연 제목 ‘아이시떼르’는 ‘사랑해’라는 뜻의 일본어다.

일본인 극작가 쯔가 코우헤이 원작 <뜨거운 바다>을 빌려 김지숙 연출로 우리 무대에 선보이고 있다. 기무라 역에 조성하, 모모따로 역에 오세준, 구마다 김태한, 하나꼬 구혜주(김진이 공동배역) 등이 출연한다. 연출자 김지숙은 <로젤>로 유명한 국내 중견 배우 출신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평균 이상 높았다면 연극인 김지숙의 역량에 대한 계산치도 사실상 작용하고 있다.

1985년 국내에 초연돼 연극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 작품의 현재 버전은 관객 개인의 기대치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 원작 <뜨거운 바다>의 최초 버전이 문득 궁금해진다. 공연은 9월 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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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