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찾아온 망령들의 습격스티븐 킹 소설 영화화… 영혼·신을 믿지 않는 3류 작가의 이야기 다뤄

통상 영화에서 주목하게 되는 인물은 배우나 감독이지만 그 밖의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가장 영화화하기 좋은 글을 쓴다는 작가 스티븐 킹도 그 중 하나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으며, 그들은 대개 원작에 힘입어 중급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본> <쇼생크 탈출>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영화들이 스티븐 킹의 원작이 지닌 치밀함을 대변해준다. 미카엘 하프스트롬의 <1408> 또한 예외는 아니다.

킹이 2002년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불치병으로 딸을 잃고 더 이상 세상과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한 3류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귀신들린 집으로 오세요

신들린 집만을 찾아 다니며 그 집들에 관한 경험담을 쓴 책으로 돈을 버는 작가 마이크 앤슬린(존 쿠삭)은 어느날 낯선 엽서 한 통을 받는다.

‘1408호에 들어가지 마라’는 짧은 메시지가 담긴 엽서구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엽서의 배경인 뉴욕의 돌핀 호텔 1408호에 투숙하기 위해 호텔로 찾아간 그는 투숙한 사람들이 모두 죽어나갔다는 호텔 지배인 올린(사무엘 L. 잭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1408호의 열쇠를 받아낸다.

처음에는 긴장했던 것이 바보 같았다고 생각할 만큼 평범한 방에서 마이크는 갑작스럽게 라디오에서 울리는 카펜터스의 “We’ve only just begun”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나 1408호의 악몽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1408>의 가장 특이한 점은 이 영화에 사실 어떤 형태의 괴물이나 유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마치 외딴 오래된 호텔에서 미쳐가는 <샤이닝>의 잭 니콜슨처럼, 1408호에서 마이크 앤슬린이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 의식과 무의식이 투영된 환영들의 습격이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끊임없이 녹음기에 기록하면서 자료를 수집하는데, 이러한 기록은 무의식적으로 그가 접하고 있는 현실적인 사물들, 사건들에 대한 상상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뉴욕의 돌핀 호텔을 방문하기 전 그가 머물고 있었던 LA에서 파도타기를 하다가 익사할 뻔한 사건은 1408호에서 다시 한번 재현된다.

1408호의 악몽에서 깨어나 바닷가에 누워 물을 토해내며 그는 그 기억이 모두 익사 직전에 꾼 악몽이었다고 안심한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상황 또한 1408호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기만적인 환영임이 밝혀진다.

1408호가 마이크 앤슬린을 공격하는 영화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1408>은 한 명의 캐릭터가 귀신들린 호텔 방과 싸우는 일종의 재난영화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1408호에서 그를 위협하는 것은 단지 환영이나 귀신들만이 아니라, 거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 하나하나가 일종의 재난의 형태로 그를 습격하기 때문이다.

방의 온도가 엄청나게 더워졌다가, 냉동고처럼 꽁꽁 얼어붙는다든가, 벽에 걸린 바다의 그림이 현실이 되어 엄청난 물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온다든가 하는 설정이 그러하다.

혹은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맨 몸으로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강행하는 마이크 앤슬린의 모습은 비록 한 명의 캐릭터일지라도 엄청난 박진감과 스릴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러한 육체적인 고난 보다 마이크 앤슬린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그의 과거로부터 찾아온 망령들이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아버지,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어야만 했던 딸 등 그의 가장 고통스럽고 내밀한 기억은 1408호에 의해 가차없이 까발려진다.

영적 존재를 다루는 소설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이나 영혼을 전혀 믿지 않는 비틀린 성격의 소유자인 마이크 앤슬린에 대해 영화는 비판적 시선을 견지한다.

이는 어쩌면 신과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의 문제라기보다는 결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 대한 스티븐 킹 식의 경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 원작에 충실한 영화… 스티븐 킹의 영화

<1408>는 <샤이닝>이나 <캐리>처럼 감독들의 개성과 인장이 강하게 찍혀있는 영화라기보다는 <미저리>나 <쇼생크 탈출> 처럼 원작에 충실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스티븐 킹 자신 또한 <1408>에 대한 평가를 매우 후하게 내리고 있다. 이는 <샤이닝>이 자신의 비전 보다는 스탠리 큐브릭의 비전에 더욱 가까운 탓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던 킹의 비판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스티븐 킹의 코멘트는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스티븐 킹의 세계를 보여주되 감독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는 데는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단편을 영화화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구성을 택해야 했던 난점을 상쇄시킬 만한 개성적인 시각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오히려 1408호에 들어간 이후보다 그 전의 이야기들이 더욱 서스펜스를 자아낸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특별히 개성적인 이야기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영화라기보다는, 흔한 이야기나 소재를 매우 노련하게 배치하고 구성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연 존 쿠삭의 호연과, 비교적 작은 배역이지만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할 카리스마를 뽐내는 사무엘 L. 잭슨의 존재감 또한 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배가시킨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하는 장르영화 마니아라면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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