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리듬에 맞춰 걸판지게 놀자구요!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이 공연은 매우 편안하고 ‘만만’하다. 배우들이 배우같지가 않다.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오빠, 언니, 또는 동생들처럼 허물없이 다가온다.

공연 시작전부터 이들은 무대 주위를 어슬렁대며 관객과 섞이기를 시도한다. 좌석표를 확인해 자리를 안내해주는가 하면 지나가던 관객에게서 넉살좋게 물까지 훌쩍 ‘뺏아’ 마신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본 공연이 시작된다. 저녁 퇴근길에 동네 골목을 지나다 친한 선배 또는 후배에게 붙잡혀 생맥주 한잔 마시러 붙들려 왔다가 눌러앉는 기분이다.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다.

극중 인물 누군가가 외치면서 신나는 한판 음악놀이가 벌어진다. “ 서둘면 꽝 돼요! ” 뮤지컬 ‘펌프 보이즈(Pump Boys)'의 본격적인 뮤직 펌핑이 시작된다.

본토의 원작도 이랬을까?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펼쳐지고 있는 ‘펌프 보이즈’는 원래 미국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무대 연주자들이 장난삼아 시작한 ‘의상놀이’에서 비롯된 뮤지컬 작품이다.

해프닝의 실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마크와 기타리스트 짐이 의기투합해 작품의 작곡을 맡았고, 존 폴리와 존 쉼멀이 편곡을 맡으면서 ‘펌프보이즈와 다이넷츠’라는 원작이 탄생됐다.

1981년 첫 선을 보인 뒤 극장과 극장들을 연이어 순회하던 중 1982년에 이윽고 브로드웨이 무대에까지 진입했다. 같은 해 토니상 작품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번 한국판 공연에서는 이지나 연출, 홍록기 조정석 이영미 전혜선 이준 박변계 등의 출연으로 무대가 꾸며진다.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엔 주유소, 다른 한쪽엔 더블 컵 다이너라는 작은 식당이 자리해 있다. 주유소에는 네 명의 펌프보이(주유소 직원)가 있고, 식당에는 두 명의 여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아웅다웅하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한 가족 같은 정이 쌓여있다. 뜨내기 손님들을 상대하며 일상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 밝고 장난끼 넘치는 이들에게도 역경은 닥쳐오고, 상심의 순간이 지나간다.

이 공연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컨트리락과 블루스에 기반한, 흥겨운 음악적 설정이다. 특히 ‘리듬’이 공연의 중심 무게를 지탱한다. 신나는 음악에 묻혀 의도적인 이야기의 주제 같은 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굳이 강요하고 싶은 마음조차 지워버린다. 감상용 음악이 아닌, 객석과 함께 들썩이게 하는 연주들이 대부분이다. ‘펌프 보이즈’가 가진 장점은 편안하다는 것, 리드미컬하다는 것, 그리고 관객과의 소탈한 교감이다. 우리말로 ‘오빠들이 채워줄께’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사실 공연의 상당 부분은 ‘관객들이 채워주고’ 있다.

‘오빠들‘이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홍록기의 밉지않은 능청과 조정석의 눈빛 연기-정확하게는 안구 연기라고 하는게 옳겠다. 그처럼 다양한 감정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큰 눈을 가졌다는 건 연기자로서 큰 복이다.-가 제대로 먹혔다. 극중 택배 배송원으로 등장하는 카메오의 합세까지 공연의 재미를 더한다.

어떤 점에서는 마치 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여름 특집 오픈 스튜디오에 나와 있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현장의 돌발성과 애드립이라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

스태프의 누군가가 프로그램북에 적은 글이 눈에 띈다. ‘일 많이 한다고 죽지는 않지만, 걱정과 스트레스는 당신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그래서 공연계의 도움이 특히 필요하다고 덧붙여 적고 싶다. 10월14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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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