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를 통쾌하게 조롱하다20여 년간 인기 누린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영화화화려한 스펙터클로 중무장… 날카로운 풍자도 돋보여

흔치 않은 가족 영화가 한 편 등장했다.

1989년 처음 미국 텔레비전에 등장해 20여 년 간 롱런하며 인기를 누려온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심슨 가족 더 무비>(이하 <심슨>)는 스프링필드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심슨 가족과 그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가족과 소규모 공동체를 무대로 한 이야기에 기대할법한 따뜻하고 푸근한 내용을 <심슨>은 가볍게 배신한다.

무능하고 폭력적이며, 소심하고 비겁하기까지 한 아버지 호머, 아버지 못지않게 폭력적이고 위험한 장난의 스릴을 즐기는 아들 바트, 무능한 남편과 가족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아내 마지, 가족 중 유일하게 똑똑하고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딸 리사, 그리고 마치 몸의 일부인 듯 고무젖꼭지를 물고 다니며 때로 괴력을 발휘하는 막내 매기로 구성된 심슨 가족의 일상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다.

<심슨>은 이미 기존 TV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다양한 소재들을 취합해 스프링필드 파괴 음모를 둘러싼 웃지 못할 소동을 그린다

■ 스프링필드를 살려내라

호머가 우연히 얻게 된 새끼 돼지의 배설물을 몰래 스프링필드 호수에 버리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된 스프링필드 호수는 호머의 오물 투기로 인해 그야말로 오염된 변종 동물들이 날뛰는 죽음의 호수가 되고, 이에 정부에서는 오염된 땅 스프링필드에 거대한 유리돔을 씌워 주민들을 외부와 격리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한 심슨 가족은 알래스카에 정착하지만, 정부가 스프링필드를 완전히 없애버릴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들은 주민들을 돕기 위해 다시 스프링필드로 향한다.

<심슨 가족>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머를 위시한 심슨 가족들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들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꾹 누르고 있는 공격과 배설의 욕구를 마음껏 채워준다는 사실이다.

호머와 그의 아들 바트는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상대방을 골탕 먹이기에 여념이 없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기를 쓰고 숨겨야만 하는 가족 내부의 온갖 문제들은 심슨 가족의 행태를 통해서 극대화되는 것이다.

<심슨>은 이러한 시리즈의 정수를 그대로 끌고 들어와, 시리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호소할 수 있을 정도로 각각의 캐릭터들을 확실하게 구축한다.

또한 시리즈의 가장 큰 즐길거리인 각종 영화와 유명 인사 패러디 또한 빠트릴 수 없는데, <심슨>에서는 새끼 돼지를 들어 천장을 기게 하며 호머가 부르는 <스파이더맨> 주제가의 변주인 ‘스파이더 피그’가 실제로 음악 차트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극중 대통령으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등장해 연예인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자신의 캐릭터 자체를 조롱하고, 톰 행크스가 본인으로 등장하여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홍보 효과로 이용되는 유명인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심슨>은 TV 시리즈에서 미처 보여지지 않았던 거대한 스케일로 빅 스크린의 매력을 한껏 뽐낸다. 극중 거대한 유리돔을 마을 전체에 씌우는 장면이나, 분노한 스프링필드 주민들에게 쫓기는 심슨 가족의 에피소드들은 극장판 심슨 가족을 보러 온 관객들의 욕구를 채워준다.

시나리오에만 2년 간 공을 들인 이 영화는 20여 년 동안 지속된 시리즈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엑기스만 뽑아놓은 이야기와 시리즈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동원하여 화려한 스펙터클로 무장하는 등 심슨 가족 팬들과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채비를 단단히 한 듯 하다.

TV 시리즈에서 외주제작을 맡아 오랫동안 작화를 담당했던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이 영화에도 대거 참여한 <심슨>에서 ‘텍사스 사투리 영어 강좌’라는 한국어 입간판을 확인하는 것은 한국 관객들에게는 더욱 은밀한 즐거움을 전해준다.

<심슨>이 여느 악취미 코미디와 다른 지점은 배설의 욕구와 더불어 날카로운 사회 풍자의 시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상반된 욕구는 가족 내부에 대한 조롱을 넘어서서 미국이라는 사회 전체에 대한 조롱으로까지 이어진다.

환경 콘서트에서 환경에 관한 연설을 하려던 밴드에게 노래나 계속하라며 깡통을 집어 던지는 몰상식한 대중들, 공짜로 나눠주는 도너츠를 먹으러 가려고 쓰레기 수거장 대신 호수에 쓰레기를 버리는 호머의 행위, 스프링필드가 오염되자 아예 도시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음모는 악의적인 쾌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엉망진창이 된 미국 사회의 단면들에 대한 예리한 스케치이기도 하다.

스프링필드의 무질서함과 재난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처한 내면적인 재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심슨>의 통쾌한 조롱은 가치의 전도나 전복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는데, 이는 시리즈의 속성에서 기인된 것이기도 하다. 항상 마지막에 가족의 화합과 화해로 끝을 맺는 시리즈 특성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결국 호머는 자신의 이기적인 행위를 반성하고 스프링필드를 구하며, 아들 바트 또한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지우고 화해의 제스처를 보인다.

언제나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장판과 화해로 반복되는 수사가 역설적으로 심슨 가족 시리즈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일지도 모른다.

<심슨>은 조롱의 제스처만을 취한 <슈렉>보다는 전복적이지만 일관되게 미국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는 <사우스 파크>에는 미치지 못하는, 둘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의 호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롱의 쾌감을 안겨주는 두 가지 목적을 적절히 성취해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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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