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제작비·메이저 배급사 이용 등 다른 요소 많아영화 전문가들 '한국엔 진정한 의미의 B급 영화 없다'

올해 한국영화 논란의 중심은 단연 <디워>다. <디워> 완성도에 관한 비평가와 네티즌의 공방은 곧잘 <디워>와 B급 영화의 비교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B급 영화와 독립영화의 구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것이 국내 영화 실정이다.

<디워>개봉과 동시에 이 영화는 찬반이 선명하게 나뉜 양상을 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디워>의 옹호자와 비판자 모두 자신의 비평 근거로 ‘B급 영화’를 인용한다는 사실이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는 “디워와 같은 B급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영화가 산업으로서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한다”며 “디워가 미국시장을 겨냥한 B급 영화라고 전제한다면, 그것의 영화적 완성도의 높낮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디워>가 왜 B급 영화와 맥락을 함께하는지에 대해서 오 교수는 설명하지 않았다.

칼럼니스트 변희재 씨 또한 “아나콘다, 옥스퍼스 같은 B급 괴수영화와 비교할 때 디워가 크게 뒤질 게 없다”며 “최소한 디워가 할리우드 B급 SF(공상과학) 시장 진출가능성은 있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

B급 영화는 <디워> 비판 코드로도 쓰인다. 김세윤 영화평론가는 “어차피 외국 애들 눈높이에 맞춘 B급 아동영화, 한국 어른들이 좋아라 하긴 힘들다”고 표현했다가 네티즌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디워>와 B급 영화가 비교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장르의 공통점이다. 1930년대에서 50년대 B급 영화는 대부분 SF나 공포, 스릴러 등 특정 장르에 치중해 제작됐다. SF 영화인 <디워>가 그 연장선상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평론가들은 이런 비교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우선 <디워>의 경우 최고의 제작비와 메이저 배급망을 통해 최고의 상영관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B급 영화와 다르다는 것이다.

강성률 영화평론가의 말이다. “B급영화는 제작비가 B급인데 디워의 경우 한국영화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서 만들었다. 배급면에 있어서도 디워는 같은 기간 국내 최대 개봉관 수를 확보했다. 심 감독의 영화 중 B급 영화를 찾자면 이전 작품인 용가리, 티라노의 발톱이 될 것이다.”

B급 SF영화가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부자연스러운 신을 보여주는 데 반해 <디워>는 성공적인 컴퓨터그래픽 화면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김성욱 영화평론가는 “트랜스포머와 비교하면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 시장의 척도로 보면 영화적 미학이나 기술수준이 결코 B급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비교의 두 번째 이유는 왜곡된 서사구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한국일보 <진중권의 상상> 코너에서 ‘잘 짜여졌든 아니든 간에 디워는 다른 B급 괴수영화에 비해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디워의 경우 ‘안정-불안정-안정’형식의 기본적인 영화구조를 취하고 있다”며 진중권씨의 견해를 반박했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

문학산 영화평론가는 <디워>를 ‘성공한 상업영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영화 평론에서 서사는 수 많은 평가기준 중 하나일 뿐이며 미장센, 비주얼, 스펙터클, 연기, 편집, 연출력 등 많은 부분이 반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종합적인 평가에서 <디워>는 B급 영화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네티즌에게 질타를 받고 있는 진중권, 이송희일은 전문영화평론가가 아니다. 디워 논쟁에서 핵심은 영화평론가가 미디어와 영화계에서 배제돼 있음을 확인 사살한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B급 영화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미국과 영화제작 시스템이 다른 한국시장에서 B급 영화를 찾기는 불가능하다는 반응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는 “한국 영화의 경우 제작목적과 예산편성, 배급망, 상영목적 등 B급 영화를 정의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영화가 없으리라고 본다”고 전제한 뒤 “굳이 찾자면 1970년대 수입쿼터를 획득하기 위해 졸속 제작된 영화를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영화시장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100억원 짜리 상업영화와 1억원 짜리 독립영화의 양극화 구조”라며 “이 둘 사이를 좁혀줄 10억원 대의 B급 영화가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어야 할 시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일부에서는 김기덕과 박찬욱, 홍상수의 영화에서 B급 영화의 미학을 찾고 있다. 기존 사회에 대한 반발과 도전, 서사구조의 왜곡 등 B급 영화의 특징을 영화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김성욱 평론가의 말.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저예산 영화인데다 촬영도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 경제적인 요건을 고려한 것이다.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영화도 B급 영화의 취향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국시장에서 산업시스템 하에 있으면서 이런 특성을 영화에 반영한다.”

강성률 평론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꼽았다. 실제 그의 영화를 보면 이야기 전개가 갑자기 끊어지고, 천주교를 반박하거나 금기에 대한 도전의식을 보이는 등 주제면에서 B급 영화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 B급 영화는… 미국 대공황 때 탄생… 주류 영화와 스토리텔링 달라

<디워>와 B급영화 비교에서 B급영화는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수준이 떨어지는 영화’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각기 다른 의미에서 B급 영화를 정의하고 <디워>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B급 영화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B급 영화의 등장배경은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이다. 대공황의 영향으로 영화관객이 줄어들자 극장측은 타개책으로 관객들에게 두 편의 영화를 ‘동시상영’한다.

먼저 상영되는 영화는 할리우드 정상적인 제작시스템 하에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영화이고, 이어 상영되는 두 번째 영화는 손님들에게 ‘보너스’ 서비스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르 영화였다.

B급 영화는 이런 목적을 위해 ‘적정한 예산 하’에서 ‘빨리 찍은’ 영화를 말한다. 메이저 배급망을 통한 주류 영화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제작된 보조 상업 영화가 바로 B급 영화인 것이다.

예산과 제작기간의 한계 때문에 대부분 스튜디오 촬영에 의존했다. 역시 제작여건을 이유로 무명배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B급 영화는 서사구조면에서 기존 주류 영화와 차이가 난다. B급 영화는 의도적으로 주류 영화의 서사구조 공식을 일그러뜨린다.

공포나 SF물 등 특정장르에 집중돼 B급영화를 제작했던 이유는 이들 장르가 안정된 서사구조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관객을 긴장시킨다는 데 있다. 60년대를 지나면서 B급 영화의 제작은 줄어든다. 극장에서 동시상영의 필요성이 없어진 까닭이다.

초반 B급 영화는 싼 예산으로 찍은 질 낮은 영화를 뜻하는 비하적인 표현이었지만, 50~60년대 프랑스평론가들이 B급 영화와 B급 감독들을 영화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조명했다.

이후 B급 영화가 지닌 창조성이 주류영화에 도입되고, 고예산 영화에서도 B급 영화의 미학을 취한 작품들이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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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